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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설교원고]

주일예배설교 2020.3.29.

사무엘서강해 48
다윗의 최후


왕상2:1-46(1-12)
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4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5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6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7 마땅히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이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그들이 내게 나왔느니라 8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9 그러나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 10 다윗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워 다윗 성에 장사되니 11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 동안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다스렸더라 12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앉으니 그의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다윗에 대한 평가

다윗의 마지막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사무엘서 강해를 마치려 합니다. 다윗의 삶을 보면 두 가지 모습이 교차됩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동행했던 다윗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살려는 진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실수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칭송을 받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권력의 정상에 올랐던 자들의 일반적 모습입니다. 영악함과 탐욕과 폭력이 있습니다. 다윗의 손에서 많은 피가 흘렀고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미화되거나 눈감은 많은 권모술수와 불의가 있었습니다.

이는 다윗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진 양면성입니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교차합니다. 선한 것과 악한 것이 함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투명하게 드러나고, 또 우리가 은밀한 가운데 행하는 것들이 그대로 라이브로 중계된다면 그 추악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실제입니다. 이중 좋은 점은 살리고, 단점은 경계하고 관리해 나가며 우리 인격이 형성됩니다. 다윗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인생은 트루먼쇼의 주인공처럼 우리 눈앞에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그 양면성 모두가 다윗 자신이지만 우리는 그중 다윗의 장점은 살리고 칭찬해야 합니다. 다윗의 단점은 비난의 목적이 아니라 삼가야 할 경계의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보는 다윗의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양면성이 있지만 우리가 무엇을 택하며 사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결정됩니다. 양면성이 있지만 나는 끊임없이 선한 방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살았다면 그것이 나입니다. 나의 좋은 면을 살리고 칭찬하십시오. 다윗을 살린 것은 사람들의 칭찬이었습니다. 열왕기서는 끊임없이 위대한 이상으로서 ‘다윗처럼’을 외쳤습니다. 그러다 다윗은 정말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다윗을 위대한 면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면서 그는 메시야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맞으면서 느끼는 것은 한국사회의 양면성입니다. 세계 각국이 전쟁처럼 고통을 겪으며 코로나와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 중에 우리 한국은 나름 선방하며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적인 투명성과 시민의식, 현대 과학과 의술이 결합된 선진국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이런 집단적 역병에 맞서 승리한 전례는 없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서 잘 관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한 편에는 신천지나 극우 세력들처럼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맹목적 미신과 선동, 패거리 의식과 폐쇄적 이기주의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양면입니다. 안 좋은 것들은 다 떨구었으면 좋겠는데 현실에서는 어렵습니다. 뿌리채 뽑히지 않고 반발도 만만치 않습니다. 박멸하겠다고 나가다가는 에너기 소비가 너무 큽니다. 안고 가야 합니다. 좋은 점은 강화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약화하고 관리하는 식으로 가야 합니다. 그렇다 보면 100%는 아닐지라도 전반적으로 좋아질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완전 박멸은 어렵습니다. 완전 박멸로 가려다가는 정신병 걸려 먼저 쓰러집니다. 관리하고 통제하는 단계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어떤 면에서는 공존입니다. 악한 영향은 최소화하면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에서 한국이 뛰어났던 것은 개방하면서도 통제했다는 점입니다. 세계화되고 개방화된 사회에서 중세적 봉쇄는 실효성이 높지 않습니다. 봉쇄가 아니라 함께 살면서도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다윗 이야기하다가 여기까지 갔습니다. 요는 다윗 안에도 좋은 면과 악한 면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중 좋은 면을 강화한 결과 오늘처럼 신앙의 영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유언

다윗의 유언은 두 가지 방향입니다. 여기서도 다윗의 양면성은 잘 드러납니다. 첫 부분은 아들인 솔로몬에게 주는 인생의 교훈입니다. 힘써 대장부가 되라고 합니다(2). 이는 남자답게 용맹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대장부답다는 것은 말씀에 적용이 됩니다. 3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말씀을 지키는 데 대장부답게 행하라는 뜻입니다. 인생의 선택의 순간에 용감하게 말씀을 택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만용이나 사업상의 모험이나 어떤 결정에 있어서 대담함이 아닙니다. 말씀 때문에 손해나 위기에 처하더라도 그 말씀을 따르는 것 이것이 대장부요 여장부 신앙입니다.

맹자 편에 나온 대장부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맹자』의 ‘등문공’ 편에 나오는 대장부의 정의입니다. “천하라는 넓은 거처에 살며, 천하의 올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큰 도리를 행하며, 지지를 얻으면 사람들과 함께 그 도리를 행하고, 지지를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리를 행한다. 부귀의 유혹도 그 마음을 더럽게 할 수 없으며, 가난의 어려움도 그의 마음을 바꾸어 놓지 못하며, 위세나 무력도 그 마음을 굽히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일컬어 대장부라고 한다.” 도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말씀으로 바꾸면 다윗이 솔로몬에게 요구하는 바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지켜야 왕조가 끊어지지 않고 번성한다는 유훈이요 국시입니다. 열왕기서에 나오는 많은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도 이 말씀을 지켰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에 달렸습니다. 국가의 부나 영토확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떤 유언을 남길 것입니까?

나머지 중 많은 부분은 사람들에 대한 평가입니다. 요압에 대해서는 그의 악행에 대해서 말하며 그로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6)고 합니다. 시므이에 대해서도 그가 퍼부었던 저주를 잊지 못하고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9)고 유언합니다. 보통 사람이 죽을 때쯤 되면 원수도 용서하고 화해하기 마련인데 다윗은 그렇지 않습니다. 맺힌 게 많았던 모양입니다. 다윗은 성질내고 싶었지만 꾹 참고 살았습니다. 요압은 통일왕국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했습니다. 시므이는 베냐민 지파의 유력한 사람입니다. 성질대로라면 진작 처리해야 했지만 왕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참았던 것입니다. 죽어가는 마당에 화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윗이나, 죽어가는 순간에도 저주를 받는 사람이나 모두 다 불행입니다.

반면에 다윗에게 고마운 사람이 있습니다. 바르실래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때에 여름날의 시원한 냉수 한그릇처럼 자신을 대접했던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습니다. 죽는 순간에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으로 남는다면 그 인생 또한 잘살았다 할 것입니다. 우리 또한 그러기를 바랍니다. 내가 귀신이 되어서도 용서하지 못한다는 사람과 귀신이 되어서도 그 은혜를 잊지 못하겠다는 사람 중 나는 어느 쪽입니까?

솔로몬의 정치

12절 이하의 말씀은 솔로몬이 왕위에 올라 다윗의 명대로 아버지의 저주를 행하는 모습입니다. 자기 형인 아도니야는 아버지의 후궁이었던 아비삭을 탐했다는 죄목으로 죽였습니다. 제사장 아비아달은 아나돗 시골로 쫓아버렸습니다. 요압은 제단 뿔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무고한 피를 흘렸던 죄값을 받아야 한다며 그를 쳐 죽였습니다. 시므이는 예루살렘 안에만 머물도록 금족령을 내렸고 이를 어겼다는 핑계 삼아 죽였습니다. 이 모든 복수를 행한 후에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46)고 말씀합니다.

이 모습은 어떻습니까? 드라마에서 그렇듯 정의의 실현일까요? 아들이 아버지의 원수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습니다. 그냥 정치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적 제거과정입니다. 불의한 피를 흘린 대가다, 쿠데타를 음모했다, 여호와의 맹세를 어겼다고 하지만 다 핑계거리입니다. 승자가 패자에게 덮어씌운 죄목들입니다. 정치사에서 정당성은 승자편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나라가 정말 안정화됩니까? 다윗도 이들만 제거되면 나라가 안정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유훈으로 남겼을 것입니다. 솔로몬 또한 이런 정적들이 제거되어야 자기 왕권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실행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시원하고 안정적으로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중이 문제가 됩니다. 견제세력이 없으니 솔로몬은 독재의 길을 갔습니다. 나중에 정권의 무능력이 드러나면 새로운 교체세력이 되어야 하는데 그 싹들을 잘라버렸습니다. 결국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나라가 두 동강 나고 말았습니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 외의 열 지파가 떨어져나가 북왕국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요한 이유가 솔로몬의 강압정책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적이나 반대자를 박멸하거나 봉쇄하면 시원할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처럼 불편해도 동거하는 방향을 취해야 합니다. 대신 그들이 주력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되고 관리하고 통제하는 선에 두어야 합니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취한 정책이 그래도 좋았습니다. 완전 제거가 아니라 시골로 보낸 정도이니까요. 이 아나돗 출신 중에 유명한 선지자가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제거의 길은 손쉽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안 좋은 선택입니다.

자연적인 과정도 한 쪽의 일방적 우세가 아니라 적당한 공존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게임이론을 이용해서 매파와 비둘기파 간의 안정적 비율을 계산했습니다. 두 종류만 있다면 무조건 싸우려는 매파가 유리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다 모두 망합니다. 비둘기파만 있으면 느리고 유사시에 위험합니다. 최종 안정된 비율은 매파 대 비둘기파가 7:5일 때입니다. 요는 한쪽이 일방적으로만 존재하면 불리하다는 점입니다. 함께 공존해야 합니다. 자연계는 대부분 종형 형태의 분포를 이룹니다. 가운데 많은 수의 주류가 있고 양 쪽 끝에 소수의 극단이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안정된 상태입니다.

우리의 성격 분포 곡선도 그렇습니다. 좋은 성격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류는 있습니다. 그 주류가 무엇입니까? 선한 것이 되도록 달려가십시오. 반면에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박멸하지 말고, 아니 박멸할 수도 없습니다. 데리고 가십시오. 그렇지만 통제 아래 두십시오. 다윗은 그 관리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솔로몬은 한쪽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위기를 맞았습니다. 열왕기는 다윗의 길이 아니라 솔로몬의 길을 가면서 실패했던 역사입니다. 저주를 부탁한 다윗의 유훈은 좋지 않은 사례입니다.

하나님이 다윗 왕조를 일방적으로 축복하셨지만 그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값없이 은혜를 받았지만 그 은혜에 머물기 위해서는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이 싸움에서 대장부답게 승리하며 나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요한복음강해 1. 말씀이 계시니라(요1:1-3)

이종철

   사무엘서강해 47. 왕좌의 게임과 솔로몬의 등극(왕상1:1-53)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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