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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설교원고]

가정, 창조의 완성


창세기 2:18-25

(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오늘은 가정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가정을 구성하는 관계에는 부부관계, 자녀관계, 부모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의 우선순위는 어떻습니까? 한번 순위를 매겨 보시지요.

옛날에는 유교문화 때문에 부모와의 관계가 우선시 되었습니다. 가장 연장자가 그 집안의 최종 결정권자였습니다. 시집온 며느리는 자녀를 낳는 일 외에는 부부관계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그저 묵묵히 참으며 지내야 했습니다. 남자가 아내를 쫓아낼 수 있는 칠거지악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중에 첫째가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시댁 식구, 시집살이가 하도 독해서 시금치의 ‘시’자만 나와도 몸서리가 처진다고 할 정도입니다. 요즘도 부모관계를 우선시 하는 가정에 시집간 여성은 남편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시집과의 관계 때문에 심할 경우 이혼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이 관계가 역전되었습니다. 이제는 최우선순위를 자녀관계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자녀를 중심으로 가정이 돌아갑니다. 아빠는 아이들 양육비와 학원비를 대주는 사람이고, 엄마는 매니저가 되어 자녀들을 교육시킵니다. 전 생활비중 자녀교육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심지어 자녀교육을 위해서 미국이나 외국으로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기러기 가족들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현재 기러기 아빠의 숫자는 근 5만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아들집에 잠시 들릴 일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며칠을 머무는데 부모님들 보시기에 이 집이 가관입니다. 이 집은 우선순위가 분명한 집안이었습니다. 이 집안의 1번은 자녀들이었습니다. 손주들에게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었습니다. 2번이 며느리였습니다. 3번이 아들이었고, 4번이 파출부, 5번이 애완견, 마지막 6번이 부모였습니다. 이런 대우에 화가 난 아버지가 말도 없이 시골로 내려가며 냉장고에 이렇게 써 붙였다고 합니다. “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사실 요즘 우리 부모님들처럼 불쌍한 세대도 없습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며느리로 들어가 고생하고, 다시 시어머니가 되어 보상받고 하는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며느리 때 고생하고, 시어머니가 되어서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위 아래로 치인 세대들이 되었습니다. 한국 인류사의 가족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에 희생자가 된 것입니다. 이런 부모님들의 심리를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정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정의 중심은 첫째는 부부관계이고, 둘째가 자녀관계이고, 셋째가 부모관계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증언하는 바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보시기에 좋지 못하더라

오늘 읽은 18절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은 타락 이전의 창조가 진행중인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만들면서 매일같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좋지 못하다는 말씀을 합니다.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섯째 날 만들어진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여섯째 날 만들어진 것은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룬 ‘가정’의 창조였습니다. 그래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 총각들은 미완성적 존재입니다. 창조의 완성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남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처녀 총각들은 빨리 시집장가들을 가십시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습니다.

이는 인간이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가르쳐 줍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혼자 살 수 없습니다. 같이 사는 존재이고 더불어 사는 존재입니다. 오늘 읽은 23절 말씀을 보면 아담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자기 짝을 맞을 때 인간은 가장 행복합니다. 인간은 서로가 부족한 존재들입니다. 남자는 갈빗대 하나가 모자라고 여자는 제 갈 곳 없이 덜렁 갈빗대 하나만 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룸으로써 완전한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할 때 상대방의 성격을 개조하려 한다거나 똑같이 일치시키려고 하지 마십시오. 서로 보충한다는 자세로 살아가십시오. 내가 부족한 것을 저 사람이 가지고 있고, 내가 가진 것으로 저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메운다고 생각하십시오. ‘그것도 못해’ 하지 마십시오. 못하는 부분은 당신이 채워줘야 할 부분입니다. 부부싸움의 대부분은 성격이 안 맞아서 입니다. 안 맞는 게 당연합니다. 살아온 성장배경이 다른 데 어떻게 같을 수 있겠습니까? 다르기 때문에 보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똑 같으면 둘 다 부족하게 됩니다.

행복은 가정에 있습니다. 행복을 일이나 직장, 사업에서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남자들 중에는 직장 일에 빠져 가정을 등한시하고, 자녀들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가장들이 많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알지만 왜 그렇게 가정까지 뒤로 하며 직장 일에 매여야 하는지 한 번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은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것들은 우리를 기다려준다. 하지만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의 뼈는 단단해져가고 있고, 피는 만들어지고 있으며, 감각은 발달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우리는 ‘내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의 이름은 ‘오늘’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벌어주는 아빠 보다 같이 시간을 내어주는 아빠입니다.

오늘 말씀의 아담이 그렇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은 새나 짐승들의 이름을 짓는 노동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담을 행복하게 해 주지 않습니다. 아담의 노동 행위를 묘사하고 있는 19절과 20절 상반절을 감싸고 있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18절과 20절 하반절입니다. 공통적으로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행복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노동이나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진정 행복하게 하는 것은 ‘가정’입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가정에 두어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은 가정과 직장이 충돌할 때 가정을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목회도 그렇습니다. 목회도 직업입니다. 목회와 가정이 충돌할 때 저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요? 그동안 한국교회 일반적인 분위기는 목회는 주님이 맡기신 신성한 일이기에 가정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목회에 전념하면 자녀 농사는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겠지, 또 가정의 행복도 보장해주시겠지 하며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교회 목회자의 자녀들이 방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회자의 자녀라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아빠라는 역할이 제몫을 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사춘기 때 많이 흔들립니다.

특히 사모의 경우는 더 심합니다. 맞는 통계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의 평균 수명이 일반적으로 여자가 높습니다. 그런데 목회자의 아내의 경우는 그 반대랍니다. 사모의 평균수명이 더 낮다고 합니다. 사모는 일반 여자들보다 4년이 더 낮답니다.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것이지요. 목사는 영광을 다 받는데 사모는 모든 수고를 다하고도 이름 없는 존재로 남습니다.

저는 목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의 행복도 목회보다는 가정에 있습니다. 목회의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정의 성공입니다. 목회는 저 없이도 돌아가지만 아빠라는 자리는 남편이라는 자리는 저 없이는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는 내 행복을 위해서, 소극적으로는 내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목회자도 가정에 우선권을 두어야 합니다.  

가정에 우선권을 둔다는 것은 시간을 내는 것을 말합니다. 일주일에 일정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십시오. 요즘은 성공학 세미나에서도 가정의 소중함을 중요시합니다. 가정이 행복해야 직장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 실패하면 아무리 성공해도 인생이 허전합니다. 제가 요즘 개척교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가족의 힘입니다. 새벽기도나 주중 예배에 사람이 없지만 그래도 그 빈자리를 우리 가족들이 채워준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아이를 하나 더 낳을 것 그랬어요.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가정이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도 부부관계가 가장 소중합니다. 이 부부관계에 부모들이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24절 말씀에서는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남자건 여자건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면 부모와 독립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 독립해야 합니다. 또 부모님들도 또한 결혼한 이후에는 더 이상 자녀들의 가정에 부당한 간섭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들은 이제 모든 문제를 아내와 상의해야 합니다. 아내가 싫어하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는 줄 의무만 있습니다. 부모 자식 관계가 기브 앤 테이크 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식은 부모로부터 받고 또 그 자식은 자기 자식에게 다 물려주는 것입니다. 직접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세대에서 세대로 주고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는 은혜의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부모를 생각하면 항상 고맙고 감사하죠. 또 우리 자식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도와줄 수 없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기브 앤 테이크 식이 되어 투자한 것을 뽑으려고 하니까 갈등이 생깁니다. 내가 해 준만큼 자식들이 안 해 주기 때문에 “자식들 길러봐야 다 쓸데없다”고 하며 분노가 쌓이는 것이지요. 이 분노가 며느리에게 쏟아지니 부부관계가 흔들립니다.

유태인들은 아이들을 기르면서 이렇게 가르친다고 합니다. “너희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지 않아, 만약 나에게 꼭 보답을 하고 싶다면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너희 후손들에게 베풀도록 해라” 탈무드에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노인이 묘목을 심고 있었습니다. 나그네가 그곳을 지나다가 물었습니다. “언제쯤 수확할 예정이십니까?” 노인이 대답합니다. “한 70년 후에나 수확할 수 있을 거야” 나그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사실 작정이신가요?” 그 말에 노인이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아니야. 내가 태어났을 때 과수원에는 열매가 잔뜩 맺혀져 있었어. 아버지가 심어주셨기 때문이지. 나도 똑같이 하고 싶을 뿐이야”

우리 교회는 대부분 젊은 분들이라 아직 부모로부터 많이 받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부모의 입장이 되어서는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모는 주는 존재입니다. 기브 앤 테이크 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많이 주십시오. 주었으면 받으려 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그렇게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녀관계가 이 부부관계를 파괴할 정도로 파고들도록 허용해서도 안됩니다. 여러분 분명히 하십시오. 자녀와의 관계보다 더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부부관계입니다. 여러분 성철 스님 아시지요, 그 분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분은 스님이시기 때문에 결혼을 않고 살았습니다. 이 분이 평생에 결혼 주례를 두 번 한 적이 있는데 그 중 한 결혼식의 주례사가 이랬습니다.

...... 제가 신도 분들 많이 만나보면, 애 때문에 시골 살면서 남편 떼어 놓고 애 데리고 서울로 이사 가는 사람, 애 데리고 미국에 가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절대 안 됩니다. 두 부부는 애기 세 살 때까지만 애를 우선적으로 하고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편은 아내, 아내는 남편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애기는 늘 이차적으로 생각하십시오. 대학에 떨어지든지 뭘 하든지 신경 쓰지 마십시오. 누가 제일 중요하냐 하면, 아내요 남편이 첫째입니다. 남편이 다른 곳으로 전근가면 무조건 따라가십시오. 돈도 필요 없습니다. 학교 몇 번 옮겨도 됩니다. 이렇게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중심으로 놓고 세상을 살면 아이들은 전학을 열 번 가도 아무 문제없이 잘삽니다. 그런데 애를 중심으로 놓고 오냐오냐 하면서 자꾸 부부가 헤어지고 갈라지면, 애는 아무리 잘해 줘도 망칩니다.

결혼도 안 한 스님이 어떻게 가정의 문제를 이렇게 잘 알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어느 곳을 가든 잘 적응을 합니다. 아이들이 받는 주된 스트레스는 외부적인 환경 문제보다도 가족관계에서 주로 받습니다. 아빠가 안 계시거나 아빠 엄마 사이가 원만하지 않을 때 아이의 인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자녀들도 행복해집니다.

요즘 기러기 아빠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지요. 자녀의 영어교육과 성공을 위해서 아빠만 빼놓고 엄마와 자녀들이 해외로 나갑니다. 자녀 교육을 위한 열성은 감동적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가족이 생이별을 해야 하지요. 아이들이 그렇게 해서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 들어갔다고 생각해보지요. 그것으로 끝입니다. 아이는 이제 한국인이 아니에요. 외국인이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영원히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살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데체 인간의 행복이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아이 문제가 부부 사이를 갈라놓아서는 안 됩니다. 가장 최상의 자녀교육은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행복을 위해 가정을 허락하셨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가정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가정의 중심은 부부관계입니다. 그 어느 것도 이 관계를 파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가정은 일보다 소중합니다. 부부관계는 부모관계나 자식관계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무엇보다 우리의 행복을 원합니다. 우리가 홀로 있으면 하나님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하십니다. 우리 부부가 한 몸을 이루어 행복할 때 주님은 “심히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행복한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이 행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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