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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설교원고]

주일예배설교 2023.11.19.

고린도전서 강해 24
결혼생활에 대한 권면


고전7:1-9
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분방하지 말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인”(빌3:5)이었다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나중에 유대교 랍비들이 됩니다. 바울의 랍비적 모습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바로 오늘 읽은 7장 말씀입니다. 랍비들이 했던 일은 율법이나 성경을 해석하는 일입니다. 율법을 해석할 때 이들은 ‘매고’ ‘푸는’ 방식을 취합니다. 금지 사항을 말할 때 ‘매고’에 해당하고, 허용이나 적용을 말할 때 ‘풀다’에 해당합니다.

바울은 7장 전체에서 결혼생활에 대한 권면을 말씀합니다. 기독교가 막 출범했고, 더구나 교회 구성원은 대부분 이방인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바울이 전하거나 해석하는 것이 곧 기독교 윤리요 법이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게 물었던 내용이 1절입니다.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이 번역은 좀 잘못되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는 말은 고린도 교인들이 한 말입니다. 너희가 이렇게 말한 문제에 대해서 답하겠다는 것이 1절의 내용입니다. 그 이하의 내용을 읽어보아도 바울은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않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이 매우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례받을 때 부정했던 자신들의 존재가 완전히 새롭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잘 알 수 있는 말씀이 고린도전서 6장 11절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받았느니라”

이런 생각을 하니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특별히 불신 남편을 둔 여자 신도나, 불신 아내를 둔 남자 신도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불신자와 성적인 관계를 가지면 자신들이 불결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나아가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 자체를 부정하게 여겼을 수 있습니다. 많은 종교에서 그렇듯이 성적인 것은 매우 금기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린도 가까이에 아테네가 있는데 거기에는 세계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 신전이 있었습니다. ‘파르테논’은 ‘처녀’라는 뜻입니다. 아테네 여신은 처녀 신입니다. 종교에서는 순결의 가치가 존중받고, 성으로 대표되는 육체성을 벗어나 고상하고 신적인 것을 추구합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답변 과정에서 결혼생활과 관련된 중요한 진리들을 말씀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이런 태도에 반대합니다. 결혼과 가정에서 성적인 관계는 매우 중요하고 아무리 불신 남편이고, 경건의 목적을 위해서라도 성관계를 무시하면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3-5) 바울은 분방하지 말라고 명백히 말씀합니다.

결혼하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성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2절입니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9절입니다.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결혼의 목적을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라며 좀 부정적으로 말씀하지만, 성적인 문제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합니다.

성적인 욕구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출산이고, 다른 하나는 쾌락입니다. 성 어거스틴이나 개신교의 청교도들은 성관계는 쾌락의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고, 오직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한 출산의 목적으로만 허용하였습니다. 성관계를 할 때는 조금도 쾌락적인 모습이 없어야 경건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간음이나 혼전 관계나 자위나 동성애나 정상적인 관계 외의 모든 성관계가 금지 또는 죄악시되었습니다. 게다가 수녀나 사제처럼 자신의 순결을 지키는 것이 이상적인 성인들이 걸어야 할 모범이 되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바울의 이 주장은 얼마나 파격적입니까? 성적 관계에서 쾌락의 목적을 인정한 것입니다. 바울은 일부일처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한편, 모든 성관계는 이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5)라고 말씀합니다. 경건의 목적을 위해서 잠깐은 허용되지만 그것도 서로 합의해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6절의 말씀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를 덧붙입니다. 이것 또한 명령이 아니라 허용이라 말하여 절대적 규율이 아니라 말씀합니다. 결국 남편과 아내의 합의에 의해서만 성관계를 잠깐 유보할 수 있을 뿐입니다.

성적 금기

성적인 욕구를 금기시하는 것이 오히려 불건전한 행태를 만들어냅니다. 성적인 욕구는 동물적 본능으로, 무시한다고 하여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적인 틀 안에서 건전하게 이끌어가야 합니다. 바울의 이 현실적인 권면이 수용되지 못하고, 성적인 것을 금기시하는 방향으로 나갔던 교회사는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인류 역사상 가장 주님은 닮은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그는 수도사였는데 수도사들이 싸워야 할 가장 중요한 싸움 중 하나가 정욕을 제어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시시에 가면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이 있는데 그 성당 뒤편에는 가시가 없는 장미가 자란다고 합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성자였지만 시시때때로 유혹하는 정욕을 이기기가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은 성 프란치스코가 그 정욕과 싸우기 위해 발가벗은 몸으로 이 장미꽃 정원을 뒹굴었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의 온몸은 장미 가시가 박혀 망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이 장미 정원에서는 가시가 없는 장미가 지금까지 자란다는 전설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연스런 성을 억압한 결과입니다. 자제와 절제가 필요하지만 이런 식으로 억압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성자니까 예외적인 경우라 치고, 일반인이 따라야 할 모범은 아닙니다. 물은 막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오히려 넘치고 엉뚱한 데로 흐릅니다. 건전하게 흘러갈 수 있는 물길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인생의 활력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의 권면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요소는 성적인 관계에서 일방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4) 남성이나 여성이나 동등합니다. 당시 가부장제적인 태도를 탈피했다는 점에서 대단합니다.

실제 이런 태도가 아담과 하와가 살던 에덴동산에서 사랑을 나누던 모습입니다. 이런 삶을 잘 형상화한 것이 바로 아가서입니다. 아가서는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노래합니다. 여기서술람미 여인이 사랑에 더 적극적입니다.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악3;1-2)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주고받는 식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바로 술람미 여인의 말입니다.

가부장제는 여성의 성적인 욕구는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남성의 욕구 해소 방식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이슬람교는 차도르니 히잡이니 하여 남성들의 성적 방종을 막기 위해 여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방향으로 갔습니다.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산물로 아무리 종교적 관습이라도 폐기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의 독신

사도 바울이 결혼생활에 대한 권면을 하고 있지만 사실 바울이 원하는 것은 오히려 결혼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7)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8) 바울은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바울은 결혼하지 않았는가? 저는 그렇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바울은 자신을 바리새인이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청년 때 결혼을 했어야 합니다. 엣세네 파는 독신을 권장했지만 바리새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바울이 홀로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에게 아내가 있었다면 그는 반드시 아내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을 볼 때, 아내와 사별했거나, 이혼했거나, 별거 상태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독신 상태입니다.

바울이 독신을 권장하는 이유가 더 중요합니다. 32절에서 34절입니다.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바로 주의 일 때문에 그랬습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고, 그때까지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바울은 주의 사역이 자기 즐거움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가정이나 삶의 욕구가 강한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은 차라리 결혼할 것을 요구합니다. 과부거나 홀아비라면 다시 재혼할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자 중요한 것은 주의 일을 향한 열심입니다. 결혼이라는 것이 주님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되니 결혼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교회사의 수도원이나 사제의 독신 제도는 이와는 다른 이유로 발생했습니다. 그 밑바탕에는 성을 불온시하는 태도가 깔려 있습니다. 극단적인 절제를 통해 신만을 사랑하겠다는 것은 대단하지만, 자연성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바울은 모두가 자신처럼 할 수는 없고 이것을 은사의 문제로 돌립니다.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7) 모두가 독신으로 살 것이 아니요 은사, 곧 독신으로 살 자신이 있거나 부르심이 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가톨릭이나 불교에서 일률적으로 결혼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개신교는 결혼 금지를 풀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 또한 원래 수도사였지만 결혼했는데 폰보라 라는 수녀원을 뛰쳐나온 수녀와 결혼을 했습니다. 정교회는 수사가 독신으로 있어도 되고 가정을 가져도 됩니다.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한국 사회가 저출산 문제로 고민이 많습니다. 독신이나 비혼도 많아졌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국가의 생산력이 저하된다고 걱정합니다. 저는 큰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노동 인구가 부족하면 해외에서 이주민을 받으면 됩니다. 한반도에 한국인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은 다 적응을 하고 맞춰갑니다. 낳을 만하면 낳습니다. 낳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니 스스로 조절하고 있다고 봅니다. 자녀를 낳는 것보다 다른 가치들이 더 중요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은사나 생각이 있고 이것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바울에게는 결혼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손해나 감수해야 할 불편함보다 주의 일을 하는 즐거움이 더 컸습니다. 감당할 능력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살았고, 모두가 다 바울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됩니다. 각자의 부르심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독신으로 살더라도 공동체는 필요합니다. 인간은 홀로 살 수는 없습니다. 바울 곁에는 디모데가 있고, 교회라는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교회와 결혼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부르심은 무엇입니까? 후회하지 말고 그 부르심에 충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강해 25. 결혼과 이혼(고전7:10-16)

이종철

   고린도전서 강해 23.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고전6:12-20)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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