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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설교원고]

주일예배 설교 2023.9.24.

고린도전서 강해 16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고전 4:1-5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

인간 몸은 유기체입니다. 유기체는 여러 장기로 구성되고 각각의 기능이 있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손톱 발톱이, 심장과 위와 콩팥과 맹장이 자기 역할이 있습니다. 자기 역할이라고 했는데 실은 자기 생명과 같습니다. 그 역할이 없으면 몸에서 불필요하고 제거될 수밖에 없습니다. 각 부분들이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할 때 몸이 제 기능을 합니다. 이것이 2절의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인간 사회도 집단을 이루기에 유기체적 특징을 보입니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자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때 그 사회가 돌아갑니다. 그런데 인간 사회는 유기체와는 달리 자기 역할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흔히는 직업이나, 자기 위치로 역할이 결정되는데 이를 확신하는 것이 자명하지 않습니다. 자기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또한 인간 사회는 자기 역할을 알았을지라도 그것이 불만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자기 직업이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또 능력 없는 자가 중요한 자리에 앉는 바람에 조직이 효율적이 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여기에 불평등, 곧 각각의 역할에 우열이 주어지고, 귀하고 천한 것과 같은 구분이 생기기도 합니다. 나중에 12장에서 바울은 이 문제를 거론합니다.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고전12:22)는 공동체 내에서 불평등을 만들어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개인은 혼란스러울지라도 사회나 조직은 어떻게든 유기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것을 더듬더듬 찾아갑니다. 불필요한 사람이 있는가? 없습니다. 태어나 생명을 얻은 것은 모두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장애인으로, 매우 심각한 인지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쓸모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다른 인간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보호받는 것도 귀한 역할입니다. 그 존재로 인해서 사람들은 사랑을 알게 됩니다. 생명의 존엄함과 인간성을 불러일으키는 자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역할을 잘 알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1)입니다.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받았으니 그리스도를 위하여 충성을 다합니다. 종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비밀을 맡았다고 말합니다. 비밀은 은밀한 것이고 소유한 자만 압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밀은 자신이 전한 복음일 것입니다. 비밀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자기 역할이 가진 소중함과 양보할 수 없는 절대성을 말합니다. 자기 직업이나 일을 이처럼 신성하고, 값지게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

자기 역할에 따라 충성되게 일하다 보면 여러 행동들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사람들의 판단이 있기 마련입니다. 연예인들이 그렇고, 우리도 SNS 활동을 하다 보면 사람들의 댓글이나 말 한마디에 얼마나 신경이 쓰이는지 모릅니다. 살면서 우리가 받는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시선 때문에 발생합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사도 바울의 태도를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판단을 들을 때 더 이상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지 마십시오.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지금 하는 일이나 행동이 옳은가에 대한 지신의 판단입니다. 옳지 않다면 사람들의 판단에 따라 바꾸면 됩니다. 옳다는 생각이 들거나 최소한 틀린 것은 아니다는 생각이 들면 사람들의 판단을 무시하십시오.

3절 말씀입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을 판단했습니다. 세상 법정이나 유대교 회당에서 바울에 대한 판단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쫓겨나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는 매우 작은 일이다, 조금도 문제 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합니다. 이것이 담대함입니다. 무시하십시오. 그리고 무소의 뿔처럼 자기 길을 가십시오.

바울의 담대함은 자기 스스로를 향한 판단에서도 나타납니다.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3-4)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 외부의 시선보다는 자기에 대한 판단입니다. 자기 확신이 흔들리거나, 지금 하는 일이 별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거나,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사람은 무너집니다.

사도 바울의 이 담대한 확신을 본받으세요. 나는 자책할 아무것도 없고 나를 판단하지 않아! 선하고 소위 착한 사람들은 이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대부분 옳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나가십시오. 바울의 자기 확신은 하나님 앞에까지 이릅니다. 하나님만이 자신을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 확신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의롭다함은 예수님으로부터 주어집니다. 그러나 사역에서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강한 확신은 일을 이루는 것이기에,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쌓은 금과 보석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바울이 성격적으로 둔감하고 외향적이고 전투적인 사람인가? 바티칸 대성당 앞에 세운 바울의 조각상에서 바울은 칼을 들고 있는 검투사 상입니다. 아닙니다. 제가 바울 서신서를 읽으면서 느끼는 바울의 성향은 내향적이며 오히려 모성적입니다. 바울도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다”(살전 2:7)고 자인합니다. 자식의 생명, 곧 교회를 위해서는 결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강인함을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여러 문제나 교육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린아이를 가르치듯 권위적이지 않고 조근조근 설명합니다. 때로는 변명하고 연약한 자처럼 호소합니다.

지금 4장까지 이르는 서신의 내용이 그렇습니다. ‘분열하지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하면 될 것을 구차한 설명을 하면서 고린도 성도들이 태도를 바꾸도록 설득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울은 강함과 자상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아무것도 판단하지 마라

바울은 최종적으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5)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는 아마도 바울에 대한 판단일 것입니다. 분열하면서 바울은 어떤 사람이야, 아볼로는 어떤 사람이야 하는 판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권고를 듣지 않고 나중에는 바울의 사도권까지 판단하는 데까지 나갑니다. 고린도후서가 바울의 사도권 문제를 다룹니다.

우리가 판단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인간의 지각이 뛰어나지 못하고, 감정이나 바람에 쉽게 휘말리기 때문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불투명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판단을 보류해야 합니다. 궁극적인 판단은 하나님만이 내리실 수 있습니다. 5절입니다.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우리 어둠 가운데 감추어져 있던 것들을 다 드러내실 것입니다. 내가 금인지, 보석인지, 나무인지, 지푸라기인지, 아니면 기초부터 잘못된 남의 자식인지 말입니다.

특히 구원 문제에 있어서는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개인의 생명을 두고 지옥에 갔다느니 천국에 갔다느니 쉽게 판단하지 마십시오. 자살한 사람에 대해서, 무신론자에 대해서, 선하게 살았지만 신앙이 없었던 사람에 대해서 지옥에 갔다고 함부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고,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예수를 믿든 안 믿든 다 하나님의 작품이요, 하나님이 만드신 자녀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할 뿐이지, 그 후의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 몫입니다.

실제 자기 구원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산상수훈에 잘 나오지 않습니까?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마7:21)라고 말씀합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서 벌어질 일들 중 하나입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이들은 자기 신앙기준으로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합니다. 기적을 행하면 세상에서는 대단한 신앙인이라고 믿었는데, 하나님의 판단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어둠 속에 감추어진 은밀한 것을 봅니다. 사람의 영광을 취했지,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뜻이나 욕망을 하나님의 뜻이라 오해했습니다.

사도 바울조차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라고 말씀합니다. 일단 예수님을 믿는 것이 출발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잘 순종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큰 교회를 이루었다거나, 기독교 교리 수호를 위해서 내가 헌신했다거나, 기적과 치유를 행했다는 것이 구원이나 상급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자칫 사람의 영광이 되고, 사람의 조직을 수호하는 일에 불과했을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도 판단하지 말고 용납하십시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각과 일이 있습니다. 그 일에 확신을 가지고 달려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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