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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설교원고]

주일예배 설교 2023.9.17.

고린도전서 강해 15
참된 지혜란 무엇인가?


고전3:18-23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참된 지혜

고린도전서 전반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나 내용은 ‘지혜’입니다.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가 대립합니다. 교회를 분열시켰던 고린도 성도들은 이 세상의 지혜를 좇았다고 규정합니다. 이에 대항하여 바울은 참된 지혜, 곧 하나님의 지혜를 말씀합니다. 그러면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단지 내용상의 차이입니까?

바울이 참된 지혜로 들었던 것은 십자가의 도입니다. 낮아지고, 희생하고, 고난받고, 패배하는 그 십자가에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십자가를 통해 사람을 살렸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바울을 통해서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고 든든히 섰습니다. 반면에 세상 지혜는 화려함과 영광과 승리를 추구하는 영광의 신학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서에서는 모든 것을 비우고 낮아지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케노시스 신앙을 말합니다. 반면에 세상의 지혜는 채우려 하고 높아지려 합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낮아지고, 섬기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희생의 신앙을 말씀하셨습니다. 반면에 세상의 지혜는 군림하고,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비우는 것, 낮아지는 것, 희생하는 것, 패배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 자체로는 선하지 않습니다. 비우는 것은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욕심이나 어리석음을 비워 참 생명과 진리로 채웁니다. 낮아지고 희생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살리고 그들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수치와 고난과 패배는 강력한 악에 저항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십자가에서 패배한 예수님에게 온 천하가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가장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참된 지혜인 이유는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승리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는 그 내용 못지않게 지혜를 실현하는 파워가 중요합니다. 베이컨은 ‘지식은 힘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많이 알면 습득한 지식으로 도구나 부나 명예나 권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푸코라는 포스트모던 철학자가 이 말을 뒤집었습니다. 그는 반대로 ‘힘이 지식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권력을 잡은 자가 지식을 정의하고 강요합니다. 권력이 비정상이라 규정지으면 그 소수자는 악이 되고, 차별을 당해도 마땅한 존재가 됩니다. 지혜는 하늘에 떠 있는 어떤 관념이 아닙니다. 현실화하는 힘이 없는 지혜는 허무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참된 지혜가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힘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19절입니다.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신다.” 20절입니다.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세상 지혜가 어리석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 계획을 틀어서 무력화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지혜가 헛것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패배를 승리로 바꾼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다면 십자가는 가장 비참한 패배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늘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권력이나 논리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늘이 감동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성사시키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자기 자신을 아는 것 또한 참된 지혜입니다. 자신이 인생이라는 무대에 주인공임을 아는 것입니다. 나에게 소유된 것은 무엇이며, 내가 누구의 소유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21절과 22절입니다.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지금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 등 사람을 자랑합니다. 자기는 이편이라거나, 이것은 누구의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서 무어라 말씀합니까? 바로 당신이 주인공이다. 사도나 사역자는 하나님이 당신을 살리고 양육하도록 보낸 종들일 뿐이다. 교회 또한 목회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세상의 모든 스승이나 이념을 대하여서도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들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이념의 노예가 되지 말고 이념의 주인이 되십시오. 누구의 생각이 아니라 당신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심지어 바울은 만물이 다 너희의 것이라고 합니다. 우주가 바로 자신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별을 만드신 이유는 바로 여러분이 바라보는 밤하늘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입니다. 심지어 생명이나 사망이나 현재나 미래도 다 너희의 것이라 합니다. 운명이나 보이지 않는 세력도 바로 우리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세상입니다. 내가 사라지면 우주도 사라집니다. 짐 캐리가 주연한 영화 《트루먼 쇼》가 있습니다. 트루먼이 살고 있는 도시는 영화 세트장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 직장을 갖고 사랑을 하는 트루먼의 모든 인생을 사람들이 카메라를 통해 지켜보고 있습니다. 트루먼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늘의 태양도, 바다나 파도도, 이웃 주민이나 아픈 과거도 모두 트루먼을 위한 연극 세트에 불과합니다. 그 도시의 시장이 아니라 트루먼이 주인공이었습니다. 나중에 이를 알고 이 도시를 벗어나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그런데 최소한 우리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내가 주인공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고 계획한 내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는 내가 주인공입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녀를 바라볼 때의 눈과 같습니다. 지위가 높든지 낮든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상관없이 부모에게는 온통 자녀만 보입니다.

중국 이태백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술을 마시다 취해 텅 빈 산에 누우면 하늘은 이불이 되고 땅은 베개가 될 것이니” 자유자적한 모습입니다. 세상의 소유나 명예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술 취할 때만 그럴 것이 아니라, 평소에 우리 세상을 그렇게 보는 대범함 필요합니다.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밥줄 때문에 연연해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다 내 것인데 그 어떤 것이 우리를 휘두를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모든 만물이 자신을 위해 있다는 믿음이 땅 한 평 없는 바울에게 자유함과 대범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

또한 자신의 소속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소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23) 홀로 서고, 앞장서서 홀로 이끌어가는 것은 힘이 듭니다. 어떤 때는 제2인자가 편합니다. 종은 시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니체는 주체적 인간을 역설하며 예수만이 세상에 유일한 크리스천이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적그리스도 취급을 하는데, 그리스도를 신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비주체화시켰다고 비난합니다. 현대인들은 신으로부터 자유를 선언하고 자유의 길을 나선 탕자와 같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정작 신을 버린 대신, 이념이나, 맘몬이나, 일이나, 지식이나, 명예나, 사람이나, 민족을 우상처럼 떠받들고 삽니다.

그 결과 자유인이 아니라 탕자처럼 돼지우리에서 꿀꿀대고 사는 비루한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어떻게든 그 마음에 주인을 모실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인간의 자유함과 존귀함은 더 고상한 것을 주인으로 삼을수록 높아집니다. 그리스도는 종교적 교주거나 우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이고 생명입니다.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그 안에 담겼습니다. 모든 사랑이며 비움이자 충만입니다.

하늘을 품은 자는 자유롭습니다. 그리스도를 많이 소유하면 할수록 우리는 자유합니다. 그것은 마치 왕의 노예와 가난한 양반의 노예의 처지와 같습니다. 섬기는 주인이 권세가 있고 고귀할수록 종의 자유는 더 커집니다.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그리스도가 우리 주인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연인이며 친구입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을 책임집니다. 사랑하면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자가 존엄함을 잃는 것을 싫어합니다. 가장 멋진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능력도 있기에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우리는 더 이상 고루하게 살지 않습니다. 그분의 뜻에 맞추어 살려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기대하는 품위 있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스도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우리 또한 소중히 여깁니다. 사람을 자랑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자랑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소유임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강해 16.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고전4:1-5)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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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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