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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설교원고]

주일예배설교 2021.1.10.

요한복음강해 39
생명의 양식


요6:22-35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썩는 양식, 썩지 않는 양식

올해도 말씀카드를 나누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말씀카드가 자신이 현재 당하고 있는 상황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현재 고민하고 있는 문제나 올 한 해 우리 인생의 계획과 어떻게든 관련됩니다. 저에게는 여호와가 영광의 칼이 되어 대적과 싸운다는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이 말씀대로 연초부터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말씀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하여 실망하지 마십시오. 다년간 경험에 의하면 훈계나 교훈의 말씀들이 더 오히려 내 삶에 도전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말씀카드를 나누다가 저를 웃게 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말씀카드는 교회학교 어린이들에게도 주어졌는데 어준이의 말씀이 오늘 읽은 요한복음 6장 27절이었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아니 어린이에게 무슨 이런 가혹한 말씀을 주시는지? 혹시 우리 어준이가 요즘 반찬 투정하고 있나요? 말씀대로 이 땅의 썩을 양식은 아무거나 잘 먹고 어린 시절부터 영원한 양식에 관심 갖기를 바랍니다.

백성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든 이유는 이 썩을 양식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 하고 배를 몰고 이곳저곳으로 다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계신 것을 알고 그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그들이 반갑지 않습니다. 썩을 양식을 찾아 왔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6) 무리가 구하는 양식하고 예수님이 주기를 원하는 양식이 다릅니다. 무리가 구하는 양식은 이 땅의 양식입니다. 떡과 물고기였고, 이스라엘에서는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입니다. 이것을 썩을 양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실제 유통기한이 지나면 썩어서 못 먹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먹을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동물들의 행동 양식을 보면 그 삶의 대부분은 먹을 것을 찾아서 생존하는 것입니다. TV에 보면 개를 훈련시킬 때 사용하는 도구는 먹을 것입니다. 먹을 것 앞에서는 꼼짝을 못합니다. 인간 또한 동물인지라 먹을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은 먹을 것 이상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영의 양식이라 합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인간은 먹을 것만 주어지면 만족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보람이라 부르고 의미라 부릅니다. 이런 것이 있어야 인간은 행복합니다. 먹을 것만 따진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는 당장 굶주려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모두가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여기에 만족을 하지 않습니다. 미래의 음식을 더 많이 쌓으려 합니다. 결국 다 먹지도 못하고 죽습니다. 더 많은 음식을 차지하려 권력투쟁을 합니다. 그래 보았자 부자나 가난한 자나 먹는 것은 한 끼 식사분량일 뿐입니다. 먹을 것을 공평하게 나누지 않는다고 싸웁니다. 이것이 그 중요하다는 정의의 문제의 본질입니다.

모든 것이 먹을 것과 직결되었습니다. 동물은 당장 먹을 것을 가지고 싸우고, 인간은 좀 더 미래의 먹을 것을 내다보며 싸운다는 점에서만 다를 뿐입니다. 주님은 이런 썩을 양식을 추구하는 삶에서 우리가 탈피하기를 원하십니다. 인간 안에는 위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위는 하늘 양식으로 채워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배우는 것은 단지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진리의 욕구 자체가 하늘 양식입니다. 다른 사람을 돕거나 정의를 위한 투쟁은 그 안에 사랑이라는 하늘 양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직업은 단순히 먹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일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고 이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라는 것도 승리를 목표로 하지만 그 안에는 민족을 향한 사랑이라 자신의 명예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부자나 권력을 가질려는 주요 이유는 단순히 먹을 것에 대한 욕구만이 아니라 자신이 가치있다고 인정 받고자는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실은 썩지 않는 영원한 양식이 있어야 삽니다.

우리가 구하는 양식의 본질에 대해서 어거스틴은 역작 『신의 도성』에서 적나라하게 제시되었습니다. 『신의 도성』을 쓴 이유는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는데 왜 쇠퇴하고 망하게 되었느냐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비판에 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목표는 이 땅의 도성의 건설이 아니라 신의 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나라는 삶의 양식이 다릅니다. 로마인들은 돈을 모으고, 별장을 짓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데 비해 기독교는 이것을 하찮게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오히려 이웃을 사랑하고, 겸손과 자선을 실행하고, 하나님에게 의존하는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영원한 양식입니다. 치부를 위하여 부를 쌓으면 그것은 썩어질 양식이지만 그 물질을 이웃과 나누면 그것은 영원한 양식입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고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눅12:33)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육신의 양식은 세상의 기업가나 권력자들이 줍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이런 양식을 구한다면 잘못되었습니다. 그런 행복을 구하려면 세상의 논리를 좇고, 로또를 사거나, 좋은 직업이나 직장을 선택하거나, 커피 하우스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작은 수다를 떠는 것이 더 행복할 것입니다. 교회는 오히려 여러분의 시간이나 돈이나 헌신을 빼앗아가는 곳입니다. 교회는 빵 대신 말씀을 주는 곳입니다. 교회는 비싼 침대 대신 마음의 평화를 주는 곳입니다. 교회는 무기 대신 여러분이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곳입니다. 이 땅에서의 행복보다 하늘나라의 행복을 주기를 원합니다.

교회가 세상처럼 빵을 주려고 하면서 교회의 타락은 시작되었습니다. 성도들은 하늘나라의 복보다는 이 땅의 복을 위해 더 많은 기도를 합니다. 목회자는 하나님 말씀의 소중함을 잃고 재물과 권력을 추구합니다. 썩을 양식의 노예가 되었고 썩을 양식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

썩을 양식은 보이지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 외적인 것에 대한 추구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이해에서도 차이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28) 사람들은 끊임없이 어떤 일을 해야하는 지를 묻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사업을 벌이고 프로그램을 짜서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29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29)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며, 우리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의 실체라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의 행동주의나 업적주의에 대한 반대입니다. 헌금을 하거나 헌신을 많이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성장시키거나 어떤 프로그램을 성공시켰을 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기적을 행하거나 어떤 능력이 나타났을 때만이 그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를 다 뒤집어버립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일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어떤 결과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사람들은 열매를 원하고 열매가 하나님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내 인생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고 어떤 업적을 내었을 때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열매보다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먼저이고 중요하다고 말씀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4) 사실 사람들은 열매에 지쳐 있습니다. 세상도 그렇고 자신도 그렇고 자꾸 열매를 요구합니다. 열매가 없어서 실망하고 열매를 맺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저는 현대인들은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탈진이나 스트레스가 다 일 중독에서 비롯됩니다. 휴식을 취해야 할 깜깜한 밤에도 불을 밝히고 일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혼이 빠졌습니다. 인도 어에 “디레 디레”가 있습니다. “천천히 천천히”란 뜻입니다. “한 잔의 차를 급히 마실수록 차는 빠르게 바닥나듯 빠르게 달려갈수록 주어진 삶은 빠르게 줄어듭니다.”(박노해) 왜 천천히 걸어야 합니까? 우리 영혼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코로나 상황은 우리로 강제 휴식을 취하게 합니다.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며 조바심을 갖기보다는 집 나갔던 혼을 기다리는 시간으로 거쟈야 합니다. 인생에 소중한 것이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향해 그리 달려왔는지 생각해 보는 잠깐 멈춤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몸은 갇혀 있지만 인터넷은 열려 있어 우리 뇌는 여전히 바쁩니다. 차분히 기다리지를 못하고 영혼은 여전히 뒤쳐져 있습니다.

생명의 양식

주님은 다른 일 할 생각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먹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상처들이나 아픔들을 말씀으로 보듬는 일입니다. 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믿음, 소망, 사랑으로 나아갈 힘과 용기를 얻고 나서야 우리는 보이는 어떤 열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이 무익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 마음이 정리되고 채워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합니다. 올바른 생각과 정신 속에서 만들어진 열매라야 자신에게도 이웃에게도 진정한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 오셨습니다. 떡을 씹듯이 꼭꼭 예수님을 먹으며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35) 예수라는 이름을 부를 때는 예수님이 종교의 한계에 갇힙니다. 예수님은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없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근원이고 사랑 자체이며 사랑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입니다. 생명의 근원이고 생명 자체이고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입니다. 진리의 근원이고 진리 자체이고 진리를 알게 해주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기쁨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예수님에게서부터 나옵니다. 이 예수님을 묵상하고 사랑하는 새해 되시길 바랍니다.


   요한복음강해 41. 나는 생명의 떡이니(요6:35-50)

이종철

   신년주일예배설교. "치유와 회복"(말4:2)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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