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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설교원고]

주일예배설교(신년) 2021.1.3.

치유와 회복


말라기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신년 새해 우리 교회 표어는 “치유와 회복”입니다. 코로나 상황을 극복하고 일상성을 회복하자는 마음에서 그렇게 정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당한 여러 상처들로부터 치유되는 새해 되기를 바랍니다. 새해는 신축년 소띠 해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외양간에서 뛰쳐나온 송아지가 뛰듯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무기력과 질병을 털고 일어나 힘차게 뛰노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소띠 해니까 모든 말을 ‘-소’로 끝내야 합니다. 여러분 “복 받으소, 행복하소, 번창하소”

코로나로 인해 해돋이 행사들이 다 취소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새해의 첫 태양을 맞는 일은 매우 중요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태양은 인간에게 결정적인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절이 12월 25일 된 데는 태양신 축제와 관련 있습니다. 이때는 고대 로마의 동지입니다. 태양이 가장 짧게 뜨는 날인 동지는 태양신이 죽고 재탄생하는 날로 여겼습니다. 중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는 말은 단순히 수사법이 아닙니다. 태양은 히브리어로 쉐뭬쉬입니다. 이는 중동지역의 태양 신의 이름 샤마스와 같습니다. 바벨론에서 태양신을 찬양하는 비문입니다. “하늘과 땅의 왕이신 ‘샤마스’여. 공평과 정의의 주이시며, 아누나키의 주이시요, 이기기의 주이시여. 약속을 폐하지 않으시며, 명령을 변하지 않으시는 주이시여!”

샤마스는 생명과 정의의 신입니다. 샤마스의 이름을 여호와로 바꾸면 됩니다. 중동인들은 하나님을 더듬어 찾다가 이런 고백을 하였는데 하나님의 중요한 성품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에서 현대인들은 그냥 하루가 밝았네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동에서는 태양이 떠오르며 그 광선이 비출 때 모든 만물이 다시 생명을 얻어 소생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불의와 불공평으로 어그러졌던 세계가 다시 정의와 공평으로 회복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마치 스마트폰이 공장값으로 초기화되듯 만물이나 세계가 창조의 첫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맞는 신년의 태양은 지난 주에 떴던 동일한 태양이 아닙니다. 새해, 곧 새로운 태양입니다. 우리의 새 인생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려는 돋는 해의 광선은 생명과 정의의 은혜입니다. 창조의 처음으로 리셋되듯이 우리 신체에 질병이 있으면 다시 건강한 생명으로 돌아가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연만물이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 각자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돋는 해가 다시 만드는 세계입니다. 우리 마음에 맺혔던 한이나 인간관계에서 빚어졌던 갈등이 풀어지는 치유와 회복이 그 결실입니다. 사회적으로 구조적으로 불평등하고 불의한 것들을 정의롭고 공평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민족이 그 무기력에서 벗어나 송아지처럼 자유롭게 뛰게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기대이고 계획입니다.

인간의 질병

무엇보다 금년 한 해 우리의 간절한 기도는 코로나로부터 벗어나 일상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백신도 치료제도 잘 작용을 하여 조속히 일상적 생활이 가능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의료진과 연구자들에게 지혜의 영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것 외에도 여러 질병을 앓고 있다면 치유되고 건강해지기를 바랍니다. 치료의 광선이 우리 몸 구석구석을 비추어 모든 질병과 바이러스를 소멸하기를 바랍니다.

치유와 회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도만 하고 있어야 하느냐? 상황이나 불가항력적인 사태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태도입니다. 우리의 마음이며 우리의 생각입니다. 이는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이나 상황이나 원수들을 대할 때 필요합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수가 박멸되기까지 기다린다면 우리는 항상 내년 내년 하며 미루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지치고 먼저 나가떨어질 것입니다. 적을 인정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하나님도 사탄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종말 때까지 그 심판은 미루어졌습니다.

성경에서는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감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감사함으로 맞는 것입니다. 전쟁의 완전한 승리만 바라보지 말고 삶의 작은 전투에서의 승리를 만끽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하루 승리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축하하십시오. 우리는 상처받고 공격당한 만큼 진보합니다. 자기 몸속에 들어온 모래라는 이물질과 씨름하면서 조개는 진주라는 아름다운 작품을 남깁니다. 고난만 보지 말고 그 속에서 자라고 있는 나의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진정한 싸움이 육신의 질병보다 마음의 질병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X-레이는 뼈까지만 비추지만 하나님의 치료하는 광선은 우리 마음속까지 비춥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내 의지로만 한다면 우리는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마음이란 것이 내 안에 있지만 얼마나 다스리기 힘듭니까?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호르몬을 조절합니다. 우리 마음을 바꾸고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사회적 질병

치료의 광선을 발하는 이 태양의 이름은 의로운 태양, 곧 정의의 태양입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사회나 구조 안에서 발생합니다. 이 구조가 정의롭게 되지 않으면 생명의 보존이나 그 풍성함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말라기서의 말씀도 바로 정의의 회복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 의로운 태양을 감싸고 있는 앞뒤의 문맥들을 보십시오. 4장 1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3절입니다.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 교만한 자, 악인들은 사회적으로 벌어지는 악을 말합니다. 가난한 자들, 약자들의 권리를 짓밟는 것이 그 악의 정체입니다. 말라기 3장 5절에서는 그들을 점치는 자, 간음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이라 꼭 집어 지칭합니다. 불평등한 사회의 개선, 정의의 회복이 돋는 해의 광선이 행할 일입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치료의 광선이 비추어 모든 어둠과 거짓과 탐욕과 불의가 불태워지기를 바랍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언론이 진실되고 정의롭고, 또 약자를 생각하며 민족의 언론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혀가 방자합니다. 민족 공동체를 분열로 이끌고, 저주와 험담과 온갖 부정적인 말들이 한국 언론으로부터 쏟아집니다. 검찰 권력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여전히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 국민이 위임해준 권력을 자신의 이해를 위해 계속해서 사용한다면 해체의 길밖에 남은 것은 없습니다. 사법 권력은 이제 그 교만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국민이 위임한 법과 양심과 인권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치우쳐 판단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신의 대리자인 것마냥 행세합니다. 사법이나 재판상의 불의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매우 무겁게 판단하는 죄입니다.

정의의 실현이 사회적 치유라면 회복은 공동체성의 회복을 목표로 합니다. 공동체성은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나눔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상징적으로 객과 고아와 과부라 통칭합니다. 민족 공동체를 위해서 개인의 욕망을 일정 포기할 수 있는 것, 이것이 공동체성입니다. 그러나 공동체란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와 욕망이 제한당해서도 안 됩니다. 한국의 코로나 대응은 K-방역이라 부를 정도로 성공적입니다. 개방성을 유지하면서도 통제에 성공하는 방식입니다. 중국이나 대만이나 뉴질랜드처럼 완전히 외부와 차단하고 락다운 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서구처럼 개인의 자유만 강조하다 통제 불능으로 간 것도 아닙니다. 한국 사회에는 교회나 소종파라는 광신적 집단이 존재하고 태극기부대라 통칭되는 반정부적 이념집단이 있습니다. 이런 열린 사회의 적들이 있음에도 적절한 선에서 통제되고 있습니다.

이런 성공적 요인에 대한 한 논문이 나왔는데 여기서 K-방역의 성공을 ‘공동체 지향적 개인주의’, ‘민주적 시민성’에서 찾았습니다. 민주적 시민성이란 ‘자유로운 개인인 동시에 공동체에 기여하는 좋은 시민’이란 뜻입니다. 더 자세히 풀이하면 “개인이 자유롭기를 바라지만, 좋은 공동체 안에서만 진정으로 자유로운 개인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 강하게 의무감을 느끼므로, 자신처럼 하지 않는 동료 시민들을 무임승차자라고 싫어하는 성향도 강하다.”(시사In, 2020.6.2.일자) 그 대표적 일례로 한국인들은 코로나 상황에서 “내가 확진자가 될까 두렵다”라는 문장에 64%가 동의했지만, 자신의 감염보다도, “주위 사람들에 피해를 끼칠까 봐 두렵다”라는 문장에 더 많은 86%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에게 필요한 것이 이 공동체성과 개인주의의 조화를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공동체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것, 그렇지만 개인의 행복을 위해 좋은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인식, 그래서 일정부분 자신의 욕망을 양보할 수 있다는 태도입니다. 그동안 우리의  공동체성은 혈연이나 집단이나 이념의 차원에 갇혀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를 맞아서 전 민족으로 확대되었으며 합니다. 정부는 이 공동체성을 실현하는 머리에 해당합니다. 이 역할에 충실할 때는 그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부동산 문제도 공동체성의 가치 측면에서 절제되어야 합니다. 세금문제, 복지문제, 평화와 통일문제도 역시 공동체성에 근거해서 풀어가야 합니다. 한 기업이나 가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장과 노동자는 한 공동체입니다.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바로 공동체성의 핵심이고 기준입니다.

영적인 질병

말라기서에서 또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영적인 질병입니다. 말라기 서는 여섯 가지 질문으로 이어지는데 그 중에 몇 가지입니다. 1장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1장 6절입니다.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하나님의 불만입입니다. 2장 17절입니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3장 13절입니다.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으며 자신들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너희가 잘못해서 나는 이렇게 마음이 상한데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보이는 물질을 더 신뢰합니다. 그 결과로 제물을 눈 멀고 병들고 저는 흠 있고 하찮은 것을 바칩니다. 물질이나 권력이 진정한 힘이라고 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악과 거짓을 서슴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기에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합니다. 3장 14절과 15절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치료하는 광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떠오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의 아픔을 아시며 반드시 우리를 고쳐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악인의 길을 가지 않습니다. 당장은 손해나더라도 말씀을 따라 삽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약속이 더딘 것에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장벽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태산 앞에서도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믿으며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위기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면, 말씀을 붙잡고 있다면, 잘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믿음의 사람입니다. 잘 하고 있습니다. 새해에 우리 민족에 우리 교회에 우리 성도님들과 각 가정에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강해 40. 생명의 양식(요6:22-35)

이종철

   요한복음강해 39. 바다 위를 걸으신 예수(요6:14-21)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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