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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설교원고]

주일예배설교 2020.1.26.

사무엘서강해 39
피난 길에 오른 다윗


삼하15:13-16:23 (읽기. 15:13-37)
15:13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14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15 왕의 신하들이 왕께 이르되 우리 주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더라 16 왕이 나갈 때에 그의 가족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왕이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하니라 17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멈추어 서니 18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19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20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21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22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23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24 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26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27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읍으로 돌아가라 28 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리라 하니라 29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 놓고 거기 머물러 있으니라 30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31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32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를 때에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온지라 33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누를 끼치리라 34 그러나 네가 만일 성읍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전에는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었더니 이제는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 35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이 너와 함께 거기 있지 아니하냐 네가 왕의 궁중에서 무엇을 듣든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알리라 36 그들의 두 아들 곧 사독의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요나단이 그들과 함께 거기 있나니 너희가 듣는 모든 것을 그들 편에 내게 소식을 알릴지니라 하는지라 37 다윗의 친구 후새가 곧 성읍으로 들어가고 압살롬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더라

다윗의 피난길

설 명절입니다. 가족들이 모이는 좋은 날이지만 애증 때문에 또는 섭섭함 때문에 다툼이 잦은 날이기도 합니다. 다윗의 집안에 대판 싸움이 났습니다. 더 이상 가족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왕궁에 남긴 후궁들을 압살롬이 공개적으로 취했습니다. 인륜에 심히 어긋나는 짓이지만 권력 다툼에서 벌어지는 일일뿐입니다. 다윗이 왕궁을 지키라며 후궁들을 남겼는데 그들이 무슨 힘이 있어 왕궁을 지킵니까? 이는 이곳이 자기 도시임을 상징하는 행위입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공개적으로 후궁들을 취한 것도 이곳이 자기 도시가 되었고, 아버지 다윗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참 볼썽사납습니다. 돈과 권력이 개입된 곳에 더 이상 가족은 없습니다.

아버지 다윗과 아들 압살롬 간의 전쟁을 다루는 성경은 마치 드라마 같습니다. 다윗의 시각으로 한 스테이지가 서술되고 이어서 압살롬의 시각으로 다른 스테이지가 전개됩니다. 이런 스테이지 변화가 반복됩니다. 15장 13절 이하는 다윗 중심의 스테이지입니다. 이스라엘의 인심이 압살롬에게로 돌아섰습니다. 다윗은 코너에 몰렸습니다. 이처럼 쉽게 분열된 것은 그만큼 열두 지파 동맹체의 기반이 허술했음을 보여줍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갈등, 협력, 반목, 분열, 통일을 반복하면서 민족은 하나가 됩니다. 그것을 역사성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공동체가 되기까지는 그만큼 수고와 낙과 아픔을 함께 겪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정세 판단이 빠릅니다.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15:14) 일말의 미련도 없이 예루살렘을 버립니다. 예루살렘은 방어하기는 좋지만 고립되기도 쉬운 곳입니다. 그렇지만 수도를 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왕들도 수도를 버리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병자호란 때는 인조가, 한국전쟁 때는 이승만 대통령이 그러했습니다. 공간의 상징성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하고, 훗날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결기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계백 장군처럼 말입니다. 그 당시는 패배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민족사에서는 이것이 민족정기의 큰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더욱이 선조나 이승만 때처럼 자기만 살겠다고 몰래 도망가는 일은 지도자로서는 해서는 안 됩니다. 백성들을 화나게 합니다. 일설에는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이나 서울 궁궐을 불살랐던 것은 성난 백성들이었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피난가는 모습은 매우 처량합니다. 23절입니다.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30절에서도 반복됩니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일단 백성들이 안타까워하고 공감했다는 점에서는 다윗은 여전히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난길입니다. 백성들이나 다윗이나 다 울면서 가고 있습니다. 권력을 잃은 자는 처량합니다. 다윗은 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가 머리를 가리고 또 맨발로 울면서 갔던 이유는 이 수모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더 다윗을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다시 자기 머리를 드실 수 있는 분은 당신뿐이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시라는 간구와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시편 3편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 지은 시”라는 표제가 달려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시3:1-2)하며 탄식합니다. 동시에 다윗은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3) 고백합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6) 찬양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7) 기도합니다.

사람들

다윗은 15, 16장에서는 피난길을 떠나고 이후에 19장에서는 다시 승리의 귀환길에 오릅니다. 성서는 이 장면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힘을 잃고 내려갈 때의 사람들의 모습, 다시 권력을 회복하고 화려한 복귀를 할 때의 사람들의 태도는 서로 다릅니다. 일단 지금은 내리막길이고 권력을 잃은 순간입니다. 다양한 반응들이 나타납니다.

1) 첫째는 잇대입니다. 잇대는 이스라엘인이 아닙니다. 그는 블레셋 가드 출신입니다. 잇대와 함께 블레셋인 600명이 다윗을 호위하며 피난길에 오릅니다.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19)며 다윗이 만류합니다. 잇대는 아마 용병이었던 듯합니다. 용병은 이익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익이 아니라 의리를 택합니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21) 잇대는 다윗이 가드에 망명해 있을 때부터 함께 했을까요? 고난의 때에 진짜 친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런 오랜 친구들이 많습니다. 오랜 세월 고난을 겪으며 맺은 우정입니다.

2) 그 다음은 사독 일행입니다. 사독은 레위인과 함께 법궤를 들고 다윗을 따릅니다. 사독은 나중에 이스라엘 대제사장이 되었고 아론을 잇는 정통 대제사장 가문을 형성합니다. 제사장이 그것도 법궤를 들고 다윗을 따라 나서려 합니다.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제가 아니라 사람의 사제가 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를 시정합니다. 다윗은 법궤를 이용해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도구로 이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25) 법궤가 아니라 법궤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오늘날도 법궤같은 껍데기만 붙잡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은 대신 사독과 아비아달과 그 아들들에게 스파이 역할을 맡깁니다. 제사장 권력이 다윗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은 강력한 힘입니다. 정통성이 다윗에게 있습니다. 압살롬은 비록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았지만 모래알처럼 불안합니다. 정통성을 갖추기에는 연륜이 더 필요합니다.

3) 세 번째는 시바입니다. 시바는 먹을 것과 나귀를 가지고 왔습니다. 피난 가는 다윗을 도우려는 조치입니다. 다윗은 의심이 가는 듯 “네 주인 므비보셋은 무엇하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대해서 시바는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므비보셋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에게 잃었던 왕위를 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 말을 듣고는 므비보셋의 소유가 다 네 것이 될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시바의 이 행동은 진실된 것이었을까요? 나중에 다윗이 다시 화려하게 복귀할 때 그때는 므비보셋이 직접 다윗을 마중 나옵니다. 나와서는 자기도 가려 하였는데 시바가 막았고 자신을 모함했다고 합니다. 그 증거로 다윗이 떠난 이후로 슬픔의 표시로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누구의 판단이 옳은지 난감해진 다윗은 재산을 둘로 나누어 시바와 므비보셋에게 각각 줍니다.

성서도 이에 대해서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은 이해관계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줄타기를 합니다. 보험도 들어놓습니다. 사실 권력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친구가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습니다. 힘 있을 때만 친구입니다. 그래도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관리하면서 적절히 활용하면 됩니다.

4) 마지막으로는 시므이란 사람입니다. 시므이는 다윗의 피난길을 쫓아가며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합니다.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16:7-8) 사실 지금껏 이 소리가 한 번도 들리지 않았던 것이 이상합니다. 사울 지파나 사울에 충성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했을 만합니다. 다윗과 경쟁하다 사울 집안이 약화되었고, 사울이나 이스보셋이나 아브넬의 죽음에 다윗이 전혀 무죄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다윗이 힘이 있을 때는 아무 소리 못하다가 다윗이 힘을 잃으니 이 소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세상일도 다 그렇습니다. 그 자리를 떠나면, 힘을 잃으면 그때서야 여기저기서 여러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분노해서 시므이의 목을 베려고 하자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16:10-11)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라 판단하였습니다. 다윗은 이 전쟁이 자신이 벌였던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생각했습니다. 욕을 먹어야 할 때는 먹어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벌을 받아야 하고, 그 고난의 과정을 거쳐야 죄가 정화됩니다.

이사야 53장의 말씀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사53:7-8) 어린양의 고난은 이스라엘 백성의 허물을 짊어진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데 어린 양이 그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방식입니다. 그와 같이 자신의 죄 때문에 벌어진 일일지라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벌이, 고난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벌어진 고난이나 어려움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판단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는 달게받겠다고 하면서 자신이 당하는 억울함은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12절입니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실제 이 믿음대로 주님은 다윗에게 선을 베푸셨습니다. 나중에 다시 왕으로 귀환할 때 시므이가 용서를 빌며 다윗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19:18) 하나님이 다윗이 당한 수모를 갚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내 손으로 일일이 반응하고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복수하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매이게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억울함을 풀 기회를 주십니다. 그때 하면 됩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주셨던 교훈이기도 합니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롬12:19) 하나님께서 친히 복수하신다는 이런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분노로 자기를 삼키고 말 것입니다. 복수만 꿈꾸다 좋은 인생을 망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사무엘서강해 40. 인간의 수와 하나님의 생각(삼하17:1-29)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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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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