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 교회
  Home > 말씀이살아있고 > 설교동영상  

     
이종철 

[설교원고]

주일예배설교 2020.1.19.

사무엘서강해 38
아들 압살롬의 반란


삼하14:1-15:12 (읽기 14:1-31)
14:1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 2 드고아에 사람을 보내 거기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상주가 된 것처럼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래 슬퍼하는 여인 같이 하고 3 왕께 들어가서 그에게 이러이러하게 말하라고 요압이 그의 입에 할 말을 넣어 주니라 4 드고아 여인이 왕께 아뢸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르되 왕이여 도우소서 하니 5 왕이 그에게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라 대답하되 나는 진정으로 과부니이다 남편은 죽고 6 이 여종에게 아들 둘이 있더니 그들이 들에서 싸우나 그들을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쳐죽인지라 7 온 족속이 일어나서 당신의 여종 나를 핍박하여 말하기를 그의 동생을 쳐죽인 자를 내놓으라 우리가 그의 동생 죽인 죄를 갚아 그를 죽여 상속자 될 것까지 끊겠노라 하오니 그러한즉 그들이 내게 남아 있는 숯불을 꺼서 내 남편의 이름과 씨를 세상에 남겨두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 8 왕이 여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가라 내가 너를 위하여 명령을 내리리라 하는지라 9 드고아 여인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이여 그 죄는 나와 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릴 것이니 왕과 왕위는 허물이 없으리이다 10 왕이 이르되 누구든지 네게 말하는 자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가 다시는 너를 건드리지도 못하리라 하니라 11 여인이 이르되 청하건대 왕은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사 원수 갚는 자가 더 죽이지 못하게 하옵소서 내 아들을 죽일까 두렵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12 여인이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의 여종을 용납하여 한 말씀을 내 주 왕께 여쭙게 하옵소서 하니 그가 이르되 말하라 하니라 13 여인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왕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하여 이같은 생각을 하셨나이까 이 말씀을 하심으로 왕께서 죄 있는 사람 같이 되심은 그 내쫓긴 자를 왕께서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4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 15 이제 내가 와서 내 주 왕께 이 말씀을 여쭙는 것은 백성들이 나를 두렵게 하므로 당신의 여종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왕께 여쭈오면 혹시 종이 청하는 것을 왕께서 시행하실 것이라 16 왕께서 들으시고 나와 내 아들을 함께 하나님의 기업에서 끊을 자의 손으로부터 주의 종을 구원하시리라 함이니이다 17 당신의 여종이 또 스스로 말하기를 내 주 왕의 말씀이 나의 위로가 되기를 원한다 하였사오니 이는 내 주 왕께서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과 악을 분간하심이니이다 원하건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과 같이 계시옵소서 18 왕이 그 여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바라노니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내게 숨기지 말라 여인이 이르되 내 주 왕은 말씀하옵소서 19 왕이 이르되 이 모든 일에 요압이 너와 함께 하였느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내 주 왕의 말씀을 좌로나 우로나 옮길 자가 없으리이다 왕의 종 요압이 내게 명령하였고 그가 이 모든 말을 왕의 여종의 입에 넣어 주었사오니 20 이는 왕의 종 요압이 이 일의 형편을 바꾸려 하여 이렇게 함이니이다 내 주 왕의 지혜는 하나님의 사자의 지혜와 같아서 땅에 있는 일을 다 아시나이다 하니라 21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청년 압살롬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요압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왕을 위하여 복을 빌고 요압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종의 구함을 왕이 허락하시니 종이 왕 앞에서 은혜 입은 줄을 오늘 아나이다 하고 23 요압이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오니 24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 25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26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27 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 28 압살롬이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29 압살롬이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압살롬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부르되 그에게 오지 아니하고 또 다시 그에게 보내되 오지 아니하는지라 30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 31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 하니 32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이 사람을 네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 33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요압의 지혜

비유는 힘이 있습니다. 복잡했던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해 줍니다. 안개 속에서 갑자기 확 시야가 열리는 경험과 같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하나밖에 없는 암양을 빼앗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 다윗의 불륜과 살인의 죄를 명쾌히 지적해 낸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형제를 죽인 아들이지만 다시 품을 수밖에 없는 난제를 쉽게 풀어냅니다. 언어의 힘이요 지혜의 힘입니다.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 문제의 본질을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지혜입니다.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잠12:18) 지혜가 정의를 이룹니다. 지혜가 화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압살롬은 그의 형이자 장자인 암논을 죽였기에 살인자입니다.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압살롬은 아들입니다. 죽일 수도 없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하니”(13:39)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14:1) 요압은 결코 압살롬 편은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불러 놓고는 압살롬을 위해 일하지 않는 모습이나, 나중에 압살롬을 죽인 자도 요압이었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이지만 정의를 실현해야 할 왕으로서의 곤혹스런 처지를 이해했습니다. 이 문제를 드고아의 한 지혜로운 여인을 통해서 해결합니다. 요압은 충성된 사자입니다. 여인의 지혜는 다윗을 시원케 하였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잠25:13)

다윗 앞에서 상복을 입은 한 여인이 자신의 곤혹스런 처지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두 아들이 있는데 들판에서 서로 싸우다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죽였다. 그런데 친족들이 이 살인한 아들을 죽이려 한다. 그러면 하나 남은 아들마저 죽어 가문의 대가 끊긴다. 이 상황을 해결해달라는 것입니다. 암논과 압살롬의 사건이지만 창세기의 가인과 아벨 사건이 연상됩니다. 하나님이 살인자 가인을 살리셨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 생명을 여기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함부로 심판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우리 생명을 불쌍히 여기셔서, 아니면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여인이 썼던 방식은 달리는 다른 각도로 보기입니다. 자기 이해에 얽혀 있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을 객관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일처럼 보니 사건이 명료하게 보입니다. 때로는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다윗의 머리가 정리되었습니다. 압살롬을 더 이상 죽은 자처럼 버려둘 수 없습니다. 여인은 마지막으로 다윗에게 충고를 합니다.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14) 땅에 쏟아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습니다. 그처럼하나님은 우리 생명을 함부로 버리지 않습니다. 다시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이미 쏟아진 물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현실로부터 가장 선한 길을 다시 찾아가야 합니다. 아직은 그러기 전입니다.

아들 압살롬

압살롬은 이렇게 해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압살롬에 대한 소개가 흥미 있습니다.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25) 아름답다고 합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흠이 없다고 합니다. 흠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자신감에 차서 오만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약간 부족한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긴장하고 노력합니다. 상대방도 심하게 견제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지혜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사람의 말을 귀를 기울일 줄 알았습니다. 다윗은 막내요, 몸집이 작고, 여러 모로 부족했기에 주변에 좋은 사람을 두어 그 약점을 보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 강해졌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주셨던 말씀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 바울이 자기 몸의 질병과 같은 가시를 제거해 주시도록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학자들은 이 가시가 간질이라는 설도 제기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자기 몸도 추스르지 못하면 얼마나 비웃음을 당하겠습니까? 그때마다 긴장하고 바울은 기도했을 것입니다. 기도하니 복음의 능력이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조개 속에 진주라는 것은 상처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물질이 들어와 상처를 냅니다. 이를 감싸는 진주주머니가 만들어지고 진주질이 분비되어 계속 감싸면서 아름다운 진주가 만들어집니다. 약간 부족한 것이, 우리의 상처가 우리를 강하게 만듭니다.

압살롬의 아름다움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그의 머리카락입니다. 풍성하고 아름다워 연말에 한 번씩 머리털을 자르는데 그 무게가 200세겔, 현대 도량형으로는 대략 2kg에 달했다고 합니다. 대머리를 가진 분들이나 머리가 송송해지는 중년들에게는 매우 부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결국 압살롬을 죽음으로 몰았던 것은 바로 이 머리털이었습니다. 그가 죽을 때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18:9) 나무에 대롱대롱 달린 압살롬의 심장을 요압이 창으로 찔렀습니다. 자기 장점이, 자기가 자랑하던 것이 자기를 죽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겸손함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18:12) 겸손은 자기 가진 것, 자기 장점을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압살롬의 반란

다윗이 압살롬을 예루살렘에 거주하도록 하였지만 만나주지는 않습니다. 다윗의 온전히 인정해야 압살롬은 자신의 옛 권력을 찾을 수 있습니다. 2년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압살롬은 이번에도 요압을 붙잡습니다. 요압의 밭에 불을 질러 그의 주의를 끕니다. 달려온 요압에게 압살롬은 그술에 있게 놔두지 왜 불렀느냐며 차라리 죄를 물어 죽는 게 났다고 합니다. 압살롬의 간절함을 보고 요압은 다윗에게 간청하고 압살롬과 다윗의 재회가 이루어집니다. 압살롬은 아들로 인정을 받게 되지만 그 관계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33) 아버지란 말이 전혀 나오지 않고 왕이란 말만 반복합니다. 더 이상 부자관계가 아니라 권력 관계만 남았을 뿐입니다.

압살롬에게 주어진 재기의 기회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이 기회를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사용합니다. 압살롬은 왕자의 권세를 호기롭게 사용합니다. 행차할 때 병거와 말을 탄 호위병 50명이 함께 합니다. 좁은 예루살렘 거리에서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압살롬은 성문 앞에서 재판관 권세를 행합니다. 다윗은 통일왕국을 이루었지만 12동맹 체제를 기초로 세워진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로 단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을 이용하여 그들의 억울함을 수용하는 척합니다. 다윗 왕은 너희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다윗을 적으로 몰아세웁니다. 자신은 그들의 편이 되어 줄 것이라 하며 선심성 공약으로 사람의 마음을 훔쳤습니다(6).

이런 식으로 4년 동안 압살롬은 권력을 찬탈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형 암논을 죽이기 위해 2년 동안을 인내하더니 쿠데타를 위해서도 4년을 준비합니다. 나름 성실하고 인내의 사람입니다. 이제 때가 되자 헤브론에서 이 일을 도모하기로 합니다.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막멜라 굴을 샀던 곳이며 다윗이 첫 왕조를 일으켰던 곳입니다. 이곳에 자신은 서원할 일이 있다며 다윗을 설득하여 갑니다. 제사들 드리면서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10) 고 선포하고 이 소식을 각 지파에 알립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늘상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무슨 무슨 기도회나 거리 예배나 설교를 빙자하여 수많은 정치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소위 원로 목사들이, 소위 교회의 지도자들었다는 사람들이 신앙과 정치를 여전히 구분하지 못합니다. 가난한 자를 위한 목소리 외에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 하나님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허약한 정치 기반을 파고들었고 반란을 일으키는 데 성공합니다.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다”(13)고 하였습니다. 물질이나 권력 관계에서 가족은 없습니다. 조선의 건국과정에서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사이가 그러했습니다. 아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를 허수아비로 만들었습니다. 예수님 태어날 당시 헤롯대왕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기 아내와 두 아들을 죽일 정도로 잔인했습니다. 그래서 헤롯의 아들이 되느니 그 집 개가 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다윗이 헤롯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그래도 부모의 정은 있었다 할 것입니다.

압살롬이란 이름은 ‘평화의 아비’란 뜻입니다. 그러나 그는 평화의 길이 아니라 탐욕의 길로 갔습니다. 가족 간의 사랑도 버렸고, 나라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갔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 앞에서 우리야에게 행한 잘못에 대한 벌로써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심판을 내리신 바 있습니다.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12:10-11) 실제 압살롬이 이 짓을 벌입니다. 그러면 압살롬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입니까? 아닙니다. 전쟁은 압살롬의 잘못입니다. 그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악을 이용해 다른 악에 대한 심판을 행하셨을 뿐입니다.

명분도 없는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혜롭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된 형편에서는 그 자리에서 최선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다윗은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고 그 과정에서 통일국가의 기초를 든든히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내부의 저항 세력을 확인했고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명이라는 물을 함부로 엎지르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이 마음을 알기에 최선을 다해 나머지 생명의 물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가야 합니다. 다윗은 그 길을 택했습니다. 우리 민족도, 우리 인생도 이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 폭력과 탐욕의 유혹을 딛고, 생명의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서강해 39. 피난 길에 오른 다윗(삼하15:13-16:23)

이종철

   사무엘서강해 37. 암논 다말 압살롬(삼하13:1-39)

이종철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Puresunn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