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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설교원고]

주일예배설교 2020.1.12.

사무엘서강해 37
암논 다말 압살롬


삼하 13:1-39 (읽기. 1-29)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2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3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4 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5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하니 6 암논이 곧 누워 병든 체하다가 왕이 와서 그를 볼 때에 암논이 왕께 아뢰되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가 보는 데에서 과자 두어 개를 만들어 그의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니 7 다윗이 사람을 그의 집으로 보내 다말에게 이르되 이제 네 오라버니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8 다말이 그 오라버니 암논의 집에 이르매 그가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가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9 그 냄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고 암논이 이르되 모든 사람을 내게서 나가게 하라 하니 다 그를 떠나 나가니라 10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음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하니 다말이 자기가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의 오라버니 암논에게 이르러 11 그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이르되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하는지라 12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13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 이제 청하건대 왕께 말하라 그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되 14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15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16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17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18 암논의 하인이 그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19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으니라 20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되 네 오라버니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그는 네 오라버니이니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하니라 이에 다말이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21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22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 23 만 이 년 후에 에브라임 곁 바알하솔에서 압살롬이 양 털을 깎는 일이 있으매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청하고 24 압살롬이 왕께 나아가 말하되 이제 종에게 양 털 깎는 일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왕은 신하들을 데리시고 당신의 종과 함께 가사이다 하니 25 왕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아니라 내 아들아 이제 우리가 다 갈 것 없다 네게 누를 끼칠까 하노라 하니라 압살롬이 그에게 간청하였으나 그가 가지 아니하고 그에게 복을 비는지라 26 압살롬이 이르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려거든 청하건대 내 형 암논이 우리와 함께 가게 하옵소서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가 너와 함께 갈 것이 무엇이냐 하되 27 압살롬이 간청하매 왕이 암논과 왕의 모든 아들을 그와 함께 그에게 보내니라 28 압살롬이 이미 그의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기를 내라 한지라 29 압살롬의 종들이 압살롬의 명령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들이 일어나 각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

다윗의 가정

다윗과 그의 가정은 성적인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성과 관련된 문제는 대부분 쉬쉬하며 감추고 싶어합니다. 기독교는 성적인 문제에 더 민감한데 매우 심각한 죄로, 타락의 극치로 간주합니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교회 내의 불륜, 성폭력, 성추행 등은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프로이드가 인간정신 발달의 주된 동인으로 성적 욕구를 들었듯이 늘상 우리 곁에서 성은 시한폭탄과 같이 위태롭게 존재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서로가 피하려는 이 낯 뜨거운 주제를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간 실상을 솔직하게 밝히며 정면돌파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성을 둘러싼 권력과 욕망, 사랑과 복수, 가부장주의와 성차별 등의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고 있습니다.

첫 구절부터 그 시작이 이상합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1) 다말은 다윗의 딸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의 누이로 소개됩니다. 아들이 있고, 다른 아들이 있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재산이나 권력이 많으면 그때부터는 가족은 없습니다. 형이나 동생 간에, 부모나 자식 간에 권력을 향한 욕망과 다툼만 있을 뿐입니다. 이런 모습은 한국의 재벌가에서 쉽게 목격됩니다.

암논은 다윗의 아들 중 맏입니다. 왕세자입니다. 그가 이복 여동생 다말을 사랑하였습니다. 이는 암논의 착각이었는데 그는 욕망을 사랑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권력 있는 자가 잘못된 욕망을 가질 때 이는 위험합니다. 힘이 없으면 포기하거나 현실에 적응을 합니다. 그러나 권력 있는 자는 다윗의 경우처럼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불법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말의 경우에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는 이복동생이고, 처녀이고, 공주이기에 나름 권력이 있고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 욕망을 이루지 못하자 암논은 병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한글성경은 ‘울화로’라 번역하는데, 그것은 상사병이 아니라 욕망을 채우지 못한 데 대한 화병이었습니다.

권력자 주변에는 간신이 있기 마련입니다. 암논의 사촌인 요나답이 암논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그는 다말을 향한 암논의 사랑을 합법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돕지 않았습니다. 유혹하는 술수와 편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선이나 악은 혼자 실행하기 어렵고 동역자가 있을 때 배가 되는 법입니다. 요나답은 자신은 머리만 빌려주었다고 변명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공범입니다.

다말을 암논의 침실로 끌어들이는 데 아버지 다윗이 이용되었습니다. 아들의 부탁을 받고 다윗은 자기 딸을 암논의 침실로 보내어 음식을 만들어 오라버니에게 먹이도록 조치합니다. 다윗은 여기서 뿐만 아니라 다음에는 압살롬에게 이용을 당합니다. 압살롬의 음모에 속아 양털 깎는 축제에 암논과 왕자들을 보내었고 암논이 죽임을 당합니다. 이전까지 모든 음모와 위험을 피해 현명하게 대처했던 다윗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무기력한 이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었고 무능력해졌습니다. 자녀들에게 휘둘리는 것은 부모의 운명입니다.

다윗은 나중에 암논의 죄가 발각되고 난후에도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합니다. 21절에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고 했는데 다윗은 무엇에 분노한 것입니까? 암논의 만행이었습니까? 자기 딸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습니까? 아니면 이런 상황 자체에 대한 분노였습니까? 다윗은 암논을 징계하지 않았고 결국 이 때문에 암논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살인한 압살롬에 대해서도 제대로 징계를 내리지 못합니다. 도망간 압살롬을 오히려 그리워하였습니다.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하니 암논은 이미 죽었으므로 왕이 위로를 받았음이더라”(39) 결국 압살롬은 다윗에 반기를 들었고 다윗 침실을 더럽혔고 나라를 두 동강 내었습니다. 정 때문에 다윗은 오히려 자식들을 망치고 있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합니다. 정의나 잔실은 아프지만 자녀를 살리는 길입니다.

암논과 다말

암논은 치밀한 음모 끝에 다말을 침실에서 성폭행합니다. 암논의 욕망을 계속해서 성경은 사랑이라고 하는데(1, 14, 15절) 진짜 사랑입니까? 그것은 욕망이었습니다. 사랑은 온유하며 친절합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합니다. 그러므로 상대의 감정이 중요합니다.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것은 폭력입니다. 암논이 품은 사랑의 정체는 관계를 갖은 후 다말을 가차없이 버리는 태도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15) 이 게 무슨 심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상을 정복한 후의 허탈감입니까? 성경은 왜 여기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와 반면에 다말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대처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건과는 달리 오늘 본문에서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말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병든 오라버니를 위하여 과자를 굽는 친절을 행합니다. 여기서 은밀한 침실로 들어간 그녀의 행동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명령이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고, 인간을 향한 순수한 신뢰에서 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암논이 성폭행을 하려하자 다말은 그 상황에서 여러 말로 설득합니다. 이것은 “나를 욕되게 하는 짓이다”, 이런 행동은 “이스라엘에서 유례가 없는 어리석은 짓이다.” 다말은 암논의 행동이 어리석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실제 어리석은 행동이었던 게 암논은 이 때문에 권력을 잃었고,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다말은 다른 길을 제시하며 설득합니다. 아버지께 말씀드려 우리는 이복남매 간이니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하면 가능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다말은 암논에게서 지혜를 상징합니다. 잠언서는 말씀합니다.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잠7:4) 다말은 지혜의 누이입니다. 암논은 이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암논은 지혜를 짓밟아버렸습니다. “젊은이가 곧 그(음녀)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잠7:22) 암논의 경우 정작 중요한 순간에 말씀이 욕정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평상시에 말씀을 따르려고 노력해야 위기 시에 말씀이 우리를 구합니다.

다말은 저항했지만 폭력의 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 이후 다말의 태도는 매우 현실적이 됩니다. 다말은 자신을 내치려는 암논을 향하여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16)고 하였습니다. 다말은 이왕 이렇게 된 바에 암논과의 결혼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순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삶이고, 명예이고, 생명이지 않습니까? 실제 율법에는 불륜이나 성폭력을 행한 자는 사형에 해당하지만, 처녀에게 행한 경우에는 배상을 하고 결혼을 함으로써 무마할 수 있습니다. 암논은 성폭행이라는 악에 더하여 무정함과 율법을 범하는 더 큰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다말은 이를 지적했지만 암논은 죽음의 길로만 갑니다. “암논의 하인이 그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18) 얼마나 냉혹합니까? 아버지 다윗은 밧세바와의 문제에서 자기 잘못을 합리화하려 하거나 나중에는 이 잘못을 끌어안는 책임적 모습을 보였는데, 암논은 전혀 죄의식도, 책임감도 없습니다.

다말은 이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약자가 할 수 있는 저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울부짖는 것입니다. 다말은 자기가 입은 공주의 채색옷을 찢었습니다. 머리에 재를 뿌리고는 손을 머리에 얹고 울면서 거리를 지나갑니다. 다말은 이 일을 쉬쉬하지 않고 소문을 내었습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미투’운동이 한창입니다. 그동안 당하고도 감추었던 여성들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병이나 상처는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야 치료도 심판도 가능합니다. 아픈데 아프다고 해야 폭력을 그칠 것 아닙니까?

다말의 저항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라버니 압살롬이 이 소식을 들었고 동생 다말을 보호합니다. 2년 후에는 이에 대한 복수가 이루어져 암논이 압살롬의 손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렇지만 다말의 신세는 처량합니다. “다말이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20)는 말과 함께 다말은 성경에서 사라집니다. 당시 사회의 통념상 다말은 더 이상 결혼할 수 없습니다. 자녀를 낳을 수도 없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공주라는 사랑스런 자리에서 생과부라는 처량한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다말은 그냥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까?

이어지는 14장에서는 성경은 일말의 희망을 제시합니다. 압살롬의 자녀들을 소개하는 장면입니다. “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삼하14:27) 아들들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는데 딸의 이름이 다말이며 얼굴이 아름다웠다고 소개합니다. 이미 1절에 다말은 “아름다운 누이”로 소개된 바 있습니다. 누이를 기억하거나 위로하기 위해서 동명의 이름을 지은 것일까요? 성경이 다말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마치 다말의 부활처럼 보입니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비극은 없습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믿어야 할 것입니다.

압살롬

14장부터 19장까지 중심인물은 압살롬입니다. 암논과 다말 이야기도 압살롬 이야기의 일부로 도입되었습니다. 다말의 불행을 계기로 왕세자인 암논을 압살롬이 제거한 것입니다. 이는 사건의 과정을 보면 더 분명히 드러납니다. 압살롬은 자기 누이 다말의 불행의 소식을 듣고도 그 자리에서 분노를 터뜨리지 않습니다. “그는 네 오라버니이니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하니라”(20)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22) 그러고는 2년 후에 복수를 행합니다. 압살롬은 정의로운 사람입니까? 진정 동생의 아픔에 분노하는 사람입니까? 압살롬은 매우 정치적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분노를 폭발하거나 아버지에게 처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결정적 기회를 엿보며 그때까지 잠잠히 참고 기다렸습니다.

가해자들은 이 사건이 잊힌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 다윗도 모든 왕자들이 참여하도록 허락했고, 범인인 암논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압살롬의 초대에 응했습니다. 암논은 거나하게 술에 취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여기서 암논은 죽임을 당합니다. 암논이 죄를 지었기에 벌은 받아야 했지만 죽음에 이르러야 할 정도였습니까? 2년 동안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그 살의와 분노를 품고 살아온 압살롬도 죄가 없다고는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방법 저 방법을 써도 안 되니까 살인했다면 나름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처음부터 자신의 손으로 죽일 생각을 하고 기회를 노렸습니다. 그냥 살인일 뿐입니다. 동생의 비극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을 뿐입니다.

다윗의 가정은 파괴되었습니다. 부와 권력이 주어진 대신 가정의 행복은 포기되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데 권력과 욕망이 개입되니 그 존엄성이 상실됩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죽음으로 모는 세 가지 독을 탐진치(貪瞋痴)라 합니다. 탐욕과 집착과 어리석음입니다. 암논과 압살롬과 다윗에게서 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에게는 탐진치를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우리 안에는 인간은 욕구를 제어하고 건전하게 분출할 수 있는 절제력이 있습니다. 집착하지 않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투명함이 있습니다. 어둡지 않고 사물의 이치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지혜가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입니다. 성령 안에서 참다운 생명을 누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서강해 38. 아들 압살롬의 반란(삼하14:1-15:12)

이종철

   사무엘서강해 36. 권력자 다윗의 추락(삼하12:1-31)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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