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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설교원고]

주일예배설교 2019.12.22.

사무엘서강해 34
다윗의 꿈의 실현, 강대한 나라


삼하8:1-10:19 (읽기. 8:1-18)
1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2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그들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들이 다윗의 종들이 되어 조공을 드리니라 3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그를 쳐서 4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5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죽이고 6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7 다윗이 하닷에셀의 신복들이 가진 금 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8 또 다윗 왕이 하닷에셀의 고을 베다와 베로대에서 매우 많은 놋을 빼앗으니라 9 하맛 왕 도이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무찔렀다 함을 듣고 10 도이가 그의 아들 요람을 보내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도이와 더불어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무찌름이라 요람이 은 그릇과 금 그릇과 놋 그릇을 가지고 온지라 11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12 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 13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15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1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사령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18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들이 되니라

강대한 나라

다윗과 그가 이룬 왕국은 메시야 신앙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다윗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꿈이었습니다. 다윗 시대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강성했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 강성함이 잘 드러난 것이 오늘 말씀에서 보는 다윗의 정복사업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주변국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때가 바로 다윗 시대입니다. 그동안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수비적인 전쟁이었다면 8장에서 10장은 외부를 향한 공격입니다.

8장 1절에 블레셋과의 전투는 간략히 언급되는데 서쪽 지중해 쪽에 위치하여 대대로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블레셋은 더 이상 적수가 안 될 정도로 약화되었습니다. 2절에는 동쪽으로 향하여 모압을 복속시킵니다. 3절에서 8절은 북동쪽으로 소바 왕국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9절과 10절에서는 북쪽에 위치한 하맛이 다윗과 화친하기 위해 금과 은을 공물로 바칩니다. 13절과 14절에서는 남쪽의 적인 에돔을 정복하고 그들을 종으로 삼습니다. 10장에서는 동쪽의 암몬의 반발이 언급되나 이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합니다. 이들 싸움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적은 다메섹에 수도를 둔 아람 왕국입니다. 아람은 이후에도 남북왕국을 괴롭히던 가장 강력한 적이었는데 다윗 시대에는 이들과의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승리합니다. 8장 11절과 12절에서는 종합적으로 이렇게 서술합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께 드리되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을 드리니라”

이스라엘의 영토를 표현할 때 ‘단에서(북쪽) 브엘세바까지(남쪽)’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달리는 “하맛 어귀에서 애굽 하수까지”(왕상8:65)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맛은 유프라테스 강 상류 쪽에 위치한 왕국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수1:3-4) 이 약속대로 유브라데 강 근처까지 영향력을 미쳤던 것이 바로 다윗 왕국입니다. 해지는 쪽 대해는 지중해를 말하는데 지중해 쪽에 있던 블레셋을 다윗이 복속시켰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주었던 광대한 땅의 약속이 다윗 왕국 때 실현되었습니다. 이 약속은 거슬러 아브라함 대까지 올라갑니다.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15:18) 아브라함에게 주었던 땅의 약속이 실현된 것이 다윗 대입니다.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을 때 하나님은 세 가지 약속을 하였습니다. 땅, 큰 민족의 약속, 이에 더불어 주어진 것이 강대한 나라의 복이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창18:18) 강대한 나라의 복이 다윗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런 제국주의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고대 사회에서 민족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큰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정복사업을 통해서였습니다. 이것은 그 민족의 영광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었습니다. 각 민족마다 영광스런 때가 있습니다. 영광스런 한 때는 민족에게 자긍심을 주고 도전과 변화로 나서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영광스러웠던 때는 언제입니까? 광개토대왕 때입니까? 삼국시대입니까? 세종대왕 때입니까? 이것이 민족의 자존심이고 약소민족들은 그 자긍심을 살려 중흥을 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 개인이나 한 가문에서도 이런 영광스런 기억이 있으면 좋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을 보람되게 만들고 자긍심을 줍니다. 그 영광을 재현하며 과감히 변화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과거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소리치고 있고 이미 그 안에는 미래를 향한 꿈이 예시되어 있습니다.

정치가 다윗

오늘 말씀에서는 세속 정치가로서의 다윗의 모습이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우리의 머리 속에 있는 다윗에 대한 인상은 시인이요 성군의 모습이지만 그 또한 세속의 왕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세속 왕에게, 그것도 고대 사회에서 산상수훈적 정치나 현대의 윤리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입니다. 전쟁 과정에서 다윗은 매우 폭력적입니다. 2절에서 다윗은 모압을 정복하고 나서 그 주민들을 엎드리게 한 후 두 줄 길이까지는 죽이고 한 줄 길이만 살리는, 곧 주민 3분지 2을 죽이는 잔인함을 보입니다. 5절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죽이고”라 전하고, 13절에서는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였다”고 합니다. 10장 18절에서는 “다윗이 아람 병거 칠백 대와 마병 사만 명을 죽였다”고 합니다. 아무리 고대의 전쟁이라 하지만 너무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대하22:8)

강성해지는 것과 윤리적인 것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구약이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이라 하여 구약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시대의 한계이고 하나님은 그런 한계를 감안하면서 자신의 구원사를 이끌어가십니다. 그래서 역사의 하나님입니다. 이런 면을 망각한 채 현대 사회에서도 성전이나 제국주의를 운운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읽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암흑 가운데서도 빛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보아야 합니다. 8장 15절입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미쉬파트)와 공의(체다카)를 행할새” 정의와 공의가 이스라엘 국가의 기치였습니다. 정의와 공의가 이스라엘을 단순한 패권국가가 아닌 위대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정의와 공의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제반 민족을 행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강대한 나라는 힘으로만 될 수 없습니다. 건전한 가치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스라엘이 제반 민족들을 복되게 할 수 있습니다. 현대 국가 사회에서는 그것이 민주주의나 평등, 개방성, 세계 시민성, 나눔과 공존 등이 그런 정신적 기치가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또한 주변의 나라들처럼 관료제도를 만들어갑니다. 열두 지파의 형제 공동체 정신이 깨어져 가고 왕조의 관료 제도로 탈바꿈되어 갑니다. 군사 분야는 요압을 세워 이끌게 합니다. 사관 곧, 세금과 군사 동원에 필요한 통제관직으로 여호사밧을 세웁니다. 제사장직으로는 실로의 제사장 직을 계승하고 있는 아비아달과 예루살렘의 신흥 제사장인 사독을 세웁니다. 나중에 이 둘은 갈등하고 사독 제사장 계열이 이후 대제사장직을 독점하게 됩니다. 특이한 것은 다윗의 아들들을 사제로 세운 것입니다. 8장 18절을 개역성경은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들이 되니라”고 번역하지만, 표준새번역은 “다윗의 아들들은 제사장 일을 보았다”고 번역합니다.

무엇이 맞습니까? 둘 다 맞습니다. 제사장, 곧 ‘코헨’이라 한 것은 히브리 성경 텍스트이고, ‘대신’이라 한 것은 헬라어 70인역입니다. 문제는 한글개역이 주로 히브리 텍스트를 중심으로 번역하다 왜 여기서는 70인역을 택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면에는 다윗을 보호해주고 싶은 생각이 있다 생각됩니다. 설마 다윗이 자신의 아들들을 제사장 삼았겠어 하는... 히브리 텍스트로 본다면 다윗은 분명 사울 못지않은 범죄요 권력 남용을 저질렀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이어온 것은 인간의 의지나 도덕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인간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 더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어떤 세상 역사책보다 인간을 미화하지 않는 것이 성경입니다. 11장에서 벌어질 밧세바 사건도 그러한데 다윗은 제국의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잘못이 낱낱이 기록되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은총

다윗의 통치에서 인상적인 행위는 ‘은총’입니다.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9:1) “다윗이 이르되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 같이 하리라”(10:2) 은총은 히브리어로 ‘헤세드’입니다. 인자, 자비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은총은 힘 있는 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관대한 태도입니다. 강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힘의 논리로 누르기만 한다면 수많은 약자들에게는 고통이요, 폭력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강자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약자에 대한 이런 헤세드입니다.

다윗은 그 헤세드를 사울의 집안에 베풉니다.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 중에 므비보셋이 유일하게 살아남았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사울이 가졌던 땅의 권리를 회복시켜줍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식탁 앞에서 먹을 수 있는 은혜를 베풉니다. 왕의 측근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9:13) 므비보셋은 양발을 다 못쓰는 장애인입니다. 다윗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 사울과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지켰다거나 약자를 대우했다며 칭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치적 목적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사울의 북왕국 세력을 포섭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므비보셋은 다리를 못쓰기에 반란을 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안전도 하고 인심도 얻는 전략입니다. 대신 므비보셋의 인생은 처량합니다. 처량하지만 므비보셋이 살 수 있는 최고의 길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다윗의 은총을 파기하고, 10장에서 그의 신하들의 수염을 깎고 옷을 잘라 벌거벗겨, 반발의 길을 갔던 암몬은 그 병사 4만 명이 죽임을 당하는 패배를 당합니다. 사태 파악을 잘못했습니다. 다윗을 축복하면 복을 받지만 다윗을 저주하면 저주를 당합니다. 그것이 다윗의 강함입니다. 자신의 힘이 강할 때는 자주의 길을 가면 되지만 부족할 때는 강자의 은총에 기대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닥친 시련이나 문제 앞 설 때 우리는 항상 약자입니다. 인생 앞에서 우리는 영원한 약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할 때 우리는 강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10)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약한 자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하였고 그래서 강하게 되었습니다. 약자입니까? 하나님을 강하게 의지하십시오. 강자입니까? 하나님의 헤세드를 이웃에게 행하십시오.


   사무엘서강해 35. 다윗의 실패와 밧세바 사건(삼하11:1-27)

이종철

   사무엘서강해 33.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삼하7:18-29)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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