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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설교원고]

주일예배설교 2019.12.8.

사무엘서강해 32
다윗언약, 네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삼하7:1-17
1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3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4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6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7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9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10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7 나단이 이 모든 말씀들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말하니라

다윗 언약

유대 랍비는 “세상은 토라(말씀), 아보다(노동), 헤세드(사랑) 이 세 가지로 유지된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89편 2절 “주의 사랑(헤세드)은 영원토록 서 있을 것이요”란 말씀에 대한 해석에서 나왔습니다. 세상이 유지되는 것, 세상을 굳건히 붙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 때문에 인간을 비롯한 만물은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악한 세상이 심판받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결국 정의와 선은 승리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과의 계약의 형태로 확약하셨습니다. 사무엘서 7장에서 다루고 있는 다윗계약은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학자들은 “사무엘하 7장은 구약성서에서 가장 중요한 장이다”(로빈슨), “사무엘서에서 가장 극적이며 신학적인 중심, 구약성경에서 복음적 신앙의 결정적 구절”(브루거만)이라 할 정도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다윗에게 하신 말씀은 다윗계약, 다윗언약이라 불립니다. 사실 계약이라고 하면 쌍방 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계약이라는 단어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 선언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계약입니다. 다윗의 성공과 실패와는 상관없이 다윗왕조가 영원히 지속되도록 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밝히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하나님은 이 약속에 기초하여 이스라엘을 지키셨습니다.

전형적인 계약의 모습은 창세기 15장에 나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의 계약입니다. 아브라함이 삼 년된 암소와 암염소와 숫양과 비둘기 중간을 쪼개어 벌려 놓았습니다. 고대 계약의식에서는 서로 의무와 권리를 약정한 뒤 계약 당사자가 이 사이를 지나갑니다. 이는 이 계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반쪽으로 쪼개짐을 당해도 좋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계약은 ‘자르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창세기 15장 18절에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라 하는데 정확히는 ‘카라트 베리트’ 곧 ‘계약을 자르다’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맺은 이 계약이 특이한 점은 그 사이를 하나님만 지났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를 무조건적 계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일방만 준수 의무를 지녔습니다. 아브라함을 복주시겠다는 강력한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이스라엘을 이끄는 계약에는 오늘 말씀의 다윗계약과 다른 하나가 더 있는데 시내산 계약입니다. 시내산 계약은 조건부 계약이라고 합니다.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약의 주된 내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지키고 복주시겠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출19:5) 여기서 말씀이나 언약은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말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계약은 이 율법을 지킬 때만 유효합니다.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의 보호가 있을 것이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율법을 들고와서는 너희가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았으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 백성이 아니라며 위협을 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패망한 사건은 하나님이 무능력해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에 계약이 파기된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위기 때에 손을 놓으셨기에 이스라엘은 패망했습니다.

이런 조건부 계약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바로 오늘 말씀의 다윗계약입니다. 다윗계약은 무조건적 계약이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다윗이나 그 후손에게 요구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13)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16) 7장에는 ‘영원히’라는 단어가 8번이나 등장합니다. 사울 왕조는 시내산 계약이 적용되어 잘못이 쌓여 심판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조는 어떤 잘못을 해도 하나님은 그 왕조를 영원히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더 이상 성전이나 법궤나 어떤 정당성을 위한 조치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유 불문하고 이스라엘을 지키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일개 다윗 왕조에 대한 신학적 정당화라고 비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법입니다. 다윗 왕조의 안정과 번영은 곧 이스라엘의 안전과 번영을 뜻합니다. 왕이 살아야 민족이 삽니다. 이는 또한 인간의 연약함을 감안한 조치입니다. 인간은 실수 할 수밖에 없는 존재고 그때마다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면 누가 그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랬다면 하나님의 구원사는 진작 망하고 실패했을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연약함에 근거해서 세계를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한 민족을 복되게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예레미야는 이 사랑 때문에 이스라엘이 망하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3:22-23) 이는 또한 희망을 가져다줍니다. 이 다윗계약에 근거해서 메시야 사상이 발전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위기를 맞고 초라해졌을 때 그들은 다윗과 같은 메시야를 기대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중흥을 기도했습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3:26) 이스라엘이 희망을 갖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완벽하게 준비되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한 기대입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당신은 이스라엘을 사랑하기로 약속하셨사오니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무조건적 계약입니다. 우리는 성만찬에서 포도주를 나누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고전11:25)라 고백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본래 이방인으로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자들이었는데 예수를 주님으로 시인하는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새 계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겠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자격도 능력도 없는 우리에게 하늘나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를 살리는 힘은 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인생에 대해서 낙관하는 이유 또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네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하나님이 이처럼 다윗을 챙기시는 이유는 일생 동안 다윗과 동행하며 그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신실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2절에서 보인 다윗의 갸륵한 마음 때문입니다.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7장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은 ‘집’이라는 단어입니다. 총 15번 반복됩니다. 1절은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로 시작합니다. 다윗은 오랜 세월 쫓기며 살았습니다. 망명 생활도 했습니다. 다윗 왕조도 유산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개척하듯이 밑바닥부터 세워야 했습니다. 다윗은 노숙도 하고 동굴에서 생활도 하고 언제 자기 목숨을 취할지 모르는 적과도 동침을 해야 했습니다. 발 뻗고 편히 잘 곳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 인생에서 처음으로 발 뻗고 누울 집, 곳 왕궁이 생겼습니다. 다윗은 누워서 천정을 보니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기억이 없습니까? 월세로 전세로 어렵게 살다가 처음 자기 집을 장만했을 때의 기쁨입니다. 모든 게 신기하고 벅차서 잠이 안 올 지경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착한 것은 그때 하나님의 집을 생각한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사는데 하나님은 초라하게도 장막에서 사는구나? 하나님은 이 마음을 갸륵하게 받으셨습니다. 대신 다윗의 집을 더 영화롭게 축복하셨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에 하나님은 다윗을 향한 경고도 함께 주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집을 지으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 누구도 집을 지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크신 하나님을 인간의 건물로는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첫 시도하는 자는 다윗입니다. 하나님이 한 왕조의 운명과 연관되는 것은 하나님에게 위험한 일입니다. 만왕의 왕이 아니라 일개 왕조의 왕으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험을 각오하십니다. 그렇지만 그 하나님이 세계와 우주를 다스리는 분임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수중에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교만이 오고 교만은 우리를 패망으로 이끕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영광을 다윗에게 주지 않으신 이유는 그가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합니다.

둘째는 다윗의 과거를 깨닫게 하여 겸손하게 만드십니다. 8절입니다.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다윗은 이전에 한낱 양치던 목동이었습니다. 이제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가난했던 시절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과거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영광에 취해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살아 있다면 현재의 모든 것은 축복입니다. 과거를 잊으면 좋은 것 주어도 그 게 좋은 것인지 모릅니다.

다윗 계약에서 정작 당사자인 다윗은 뒷전에 있고 이를 중개하고 있는 것은 선지자 나단입니다. 나단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과 경고가 다윗에게 주어집니다. 이 좋은 것을 다윗이 직접 듣고 말씀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또한 다윗을 겸손하게 하는 조치입니다. 다윗이 살려면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주위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줄 알 때 권력자의 자리는 더 견고해집니다.

마지막으로 다윗 왕조를 향한 경고입니다.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14) 성전 건축의 영광은 다윗의 아들에게로 돌아갑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준공합니다. 다윗 계약이 주어졌다고 하여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했다고 하여 사울 왕조처럼 버림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구원에서 멀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할 때 하나님의 징계는 있습니다. 그것을 사람의 매와 인생 채찍이라 합니다. 징계는 사랑하기 때문에 내립니다. 그것은 완전히 망하는 징계가 아닙니다. 돌이키라는 사랑의 매입니다.

외경 마카비 하에서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스라엘에게 징계를 내리시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방 민족은 죄를 저질러도 하나님께서 그 죄가 무거워질 때까지 기다리시다 심판하시는데 그러면 결국 멸망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는 죄를 지을 때마다 벌을 내리셔서 우리 죄가 절정에 이르지 않도록 하신다.” 내가 잘못해도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이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무관심은 더 위험합니다. 사랑하기에 조금만 벗어나도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토록 영화롭고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잠깐 낮추시고 아프게 하시는 것 같지만 결국은 선하고 복된 결말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선하심을 잊지 마십시오.


   사무엘서강해 33.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삼하7:18-29)

이종철

   사무엘서강해 31.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성으로(삼하6:1-23)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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