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 교회
  Home > 말씀이살아있고 > 설교동영상  

     
이종철 

[설교원고]

주일예배설교 2019.11.24.

사무엘서강해 30
예루살렘 시대의 개막


삼하4:1-5:25 (읽기 5:1-25)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2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4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6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9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11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13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두었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14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15 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 16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 17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18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19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20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21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치우니라 22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23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24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25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통일왕국의 왕이 되다

다윗은 세 번째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5:3) 이제는 명실상부한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세 번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그가 왕위에 오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보통은 혁명이든 계승이든 단번에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목동 시절에 가족들 앞에서 사무엘에게서 처음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는 헤브론에서 유대 왕으로, 이제는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마치 한 나라의 개국과 성장을 보여주듯, 밑바닥부터 다져갔고 그때마다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이 된 것은 앞선 4장의 사건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2년 동안 잠시 열한 지파의 왕이었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암살을 당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번에도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정적을 제거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사울과 요나단입니다. 블레셋에 의해서라지만 다윗은 그들의 죽음을 매우 슬퍼했고 장례사로 그들이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거짓으로 자신이 왕을 시해했다는 아말렉 청년에 대해서는 죽임으로 응징했습니다. 북왕국의 실권자 아브넬이 암살당한 일에 대해서는 그 주범인 자신의 군대장관 요압을 저주했으며 아브넬의 장례식은 정중히 치렀습니다. 이번 세 번째는 북왕국의 왕 이스보셋을 죽이고 그 목을 잘라온 레갑과 바아나는 매우 처절하게 복수를 단행했습니다. 4장 12절에서, 그들을 죽였다, 손과 발을 잘랐다, 헤브론 못가에 매달았다며 연속되는 동사로 자신이 매우 분노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마음이 다윗에게로 돌아섰습니다. 더 이상 다윗을 대적할만한 세력이 없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다윗이 있는 헤브론으로 나아갔습니다.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1) 하며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웁니다. 이상의 모든 과정은 정말 다윗이 개입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간에 다윗에게는 정적이 제거하는 최상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역사가 항상 승자 편에서 미화되기에 우리는 그 자세한 속사정을 알 수 없습니다. 의심은 가지만 성경이 달리 언급이 없으니 우리는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대로 사실이라면 우리는 다윗을 부당하게 의심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성경이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원수를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친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명예롭게 하시고 그로 승리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의 술수와 음모를 이용하여 자신의 계획을 성취해 가십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런 하나님의 주권과 성실하심에 자신을 맡기고 스스로가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울은 이에서 실패하였습니다. 자기 손으로 급하게 이루려다 일을 더 망치고 말았습니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9)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도, 우리의 복수를 행해 줄 분도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으로 삽니다. 그래야 편안합니다. 그래야 승리를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시대

다윗이 왕이 된 만큼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7절입니다.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여부스 족속이 거하던 예루살렘이란 도시를 다윗이 빼앗았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부에 위치합니다. 이곳은 천혜의 요새이기도 합니다. 다윗이 이곳을 치려하였을 때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6)며 사람들이 조롱했을 정도입니다. 시온 산은 예루살렘에서 약간 높은 구릉지입니다. 이곳에 다윗성이 세워졌고 여기서 확장되어 성도 예루살렘이 건설되었습니다. 다윗은 이곳에서 33년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대대로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성전이 건축된 후에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지난 세기에는 예루살렘 성도 3천 년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중심은 이제 시내 산에서 예루살렘이 터한 시온 산으로 옮겨졌습니다. 온 천하보다도 더 크신 하나님이 유일하게 좌정하신 곳이 바로 이 시온 산이다. 그래서 시편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시48:2) 시온 산은 해발 800m 밖에 되지 않는 낮은 산입니다. 세상에는 그보다 높고 우람하고 아름다운 산이 얼마나 많습니까? 시온 산보다 열 배나 높은 에베레스트 산도 있고, 바로 북쪽에는 항상 하얀 눈으로 드리운 3,000m의 헐몬 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온 산이 가장 높은 산이며 가장 아름다운 산입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시온 산을 북방에 있는 산처럼 묘사하는데 실제 시온 산이 북쪽에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당시 사람들은 신의 거처가 북쪽 가장 높은 산에 거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바로 그 북방산이 시온이며, 그러기에 시온은 이스라엘의 중심을 너머 온 우주의 중심입니다.

시온에 대한 찬양은 급기야 시온 난공 불락설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시온은 하나님이 선택했기에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앙입니다. 예루살렘이 불타고 멀리 포로로 끌려갔을 때 그들은 무엇보다 시온을 그리워하였습니다. 급기야 19, 20세기에는 2천 년 동안 팔레스틴에서 쫓겨나 유랑하던 유태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을 일으켰고 그 결과 이스라엘 나라가 섰습니다.

3천 년 도시 예루살렘의 이름에는 ‘평화의 터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10가지의 아름다움을 이 땅에 심어 놓았는데 그 중 9개가 예루살렘에 있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평화의 터전’이라는 도시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비운의 성이었습니다. 지난 3천 년간에 걸쳐 20회 이상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성벽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재건되었던 것만도 10번이나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시온을 지칭할 때 의인화하여 ‘딸 시온’ ‘처녀 시온’이란 부르는데 이는 여자들의 비참한 운명을 떠오르게 합니다.

지금도 이곳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성지로 항상 긴장감이 돌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기도 시간에 맞춰 코란 읽는 소리와 흰옷을 입은 많은 군중들이 알라를 향하여 경배합니다. 그 아래쪽에서는 통곡의 벽에서 유태인들이 머리를 벽에 찧으며 기도를 합니다. 그 배경으로 성당의 종소리가 퍼져나가며 십자가의 길을 따라 기독교인들이 행진을 합니다. 서로 공존하고 다양성을 인정할 때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유태인이나 팔레스타인이나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살 때 예루살렘의 평화의 꿈은 이룰 수 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며 이런 속담이 생겼다고 합니다. 8절입니다.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그것은 배제와 차별의 논리입니다. 옛 예루살렘의 모습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모든 민족이 물밀듯 그리로 모여들 것이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2:2-3) “...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56:6-7) 예루살렘은 유태인만의 도시가 아닙니다. 많은 민족들과 이방인들과 저는 자들이 함께 하는 열린 도시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새예루살렘이고, 그러할 때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목동에서 이스라엘 목자로

한낱 양치던 목동이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2)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목자의 일과 같습니다. 풍성한 꼴로 먹이고, 위험과 질병에서 양들을 지키듯 백성들에게 대하면 됩니다. 부지런해야 하며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 목숨을 내어놓고 양들을 지킵니다. 이것이 참다운 사랑이요 주인된 자의 자세입니다. 나라도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중심이 시내 산에서 시온 산으로 바뀌듯, 이제 사람도 바뀝니다. 중심이 모세에서 다윗으로 옮겨갑니다. 모세는 나라의 비전과 질서를 제시했던 사람이라면 다윗은 그 비전을 성취하는 자입니다. 다윗은 율법에 기초하여 가장 부강한 나라를 이루었고, 가장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시려던 복을 다윗이 성취했습니다. 다윗은 이후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스라엘이 회복해야 할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렸던 메시야 의 모습도 다윗이 그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현실적인 왕입니다. 그는 권력자입니다. 다윗은 두로왕 히람을 통하여 왕궁을 비롯한 많은 건축물을 짓기 시작합니다(11-12). 다윗은 자신의 영예와 부귀가 이스라엘을 명예와 직결된다 생각합니다. 왕들이 흔히 빠지는 착각입니다. 다윗은 이미 많은 아내들이 있었음에도 예루살렘에서 더 많은 아내들을 정략적으로 둡니다(13-16), 많은 왕자들을 두었기에 그들 간에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은 필연적입니다.

다윗 평생에 전쟁은 끊일 날이 없습니다. 다윗의 후계자가 되었던 솔로몬의 이름에도 평화라는 뜻이 담긴 것을 보면 그 삶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17-25절은 블레셋과의 싸움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하나님께 물으며 진행했습니다. 첫 전투는 기습공격으로 전개되었는데 다윗이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20)고 고백할 정도로 통쾌한 승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두 번째 전투에서는 배후를 공격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뽕나무 수풀 맞은 편에서 다윗의 군대보다 앞서서 하나님이 싸우셨습니다. 왕은 능력와 승리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셔서 다윗으로 승승장구하게 하십니다.

오랜동안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괴롭혀왔는데 다윗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후로 더 이상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그들은 몇몇 도시 국가 형태로 연명했을 뿐입니다. 다윗은 결국적으로 팔레스틴 땅을 차지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입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시는 모든 영광과 승리의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광의 상징일 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복과 평화를 가져오는 방식은 다릅니다. 제자들이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데 실패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강제로 또 자기 민족만 위하는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길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으로, 자기 부정으로, 낮아짐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평화를 주시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눅19:42) 평화는 힘의 논리에 의해서 폭력과 배제에 의해서는 이룩될 수 없습니다. 사랑과 공존과 낮아짐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평화의 길입니다. 대림절을 앞두고 11월의 마지막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가 우리 민족과 우리 가정과 우리 마음 안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사무엘서강해 31.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성으로(삼하6:1-23)

이종철

   사무엘서강해 29. 헤브론에서 다윗이 왕이 되다(삼하2:1-3:39)

이종철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Puresunn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