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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신자유주의와 신학의 자세에 대해



늦게 답장 드려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사정도 있고, 주제가 단순하지가 않아 선듯 답장드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정치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저로서는 상식 수준의 답변을 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의 자연스런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시장의 논리에 맡기자는 운동입니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막고자 등장했던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 시키고 모든 것을 '보이지 않는 손'에게 맡기자는 논리입니다. 그 구체적 요구사항으로서는
기업의 민영화, 노동 시장 유연화, 정부 지원 배제, 복지 정책 축소, 국가간 장벽철폐 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배후에 제3세계의 출혈을 통해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제1세계의 흑심이 숨겨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거스릴 수 없는 추세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이라는 사회가 여전히 전근대적인 기업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세계로부터 지나치게 보호되어 왔다는 점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이 점에서 신자유주의를 긍정적으로 봅니다. 한국기업이나 정치는 전근대성을 극복하고 합리성과 경쟁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21세기 지구촌 사회를 맞아 지나친 민족적 장벽(정서적, 경제적)을 철폐하고 세계화로 나아가는 것은 필연적인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힘없는 노동자가 실업과 노예적 종속이라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이며, 또 국가경제가 다국적 자본에 의해 예속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오늘의 신학이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그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방향성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1) 우리의 소망은 하늘

땅에 것에 연연해 하지 말고, 이 세상의 흐름에 일희일비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가야할 곳은 하늘나라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며,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은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는 사랑입니다.

전혀 엉뚱한듯한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신앙인들이 지나치게 세상 풍조와 흐름에 민감하여 신학의 근본자세마저도 바꾸려는 경향이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현실에 대해서 냉철히 분석해야 합니다. 인간의 죄성과 원수 마귀가 어떻게 교묘히 위장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그 피조세계를 노략질하는가에 대해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체제나 흐름 자체를 막거나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는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가나 이해 당사자의 일이지 우리 신학의 임무는 아닙니다. 우리 신학은 어떤 체제도 하나님나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신학은 모든 체제(그것이 사회주의가 되었든, 국가독점자본주가 되었든, 신자유주의가 되었든)에 대해서 비판적 예언자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나 그 형적은 다 지나갈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신학이 자기 임무에 충실할 때, 건전한 정치운동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동안 진보적 신학은 지나치리만큼 제국주의적으로 자기영역을 확장하였습니다. 그 결과 자기 정체성도 상실하고, 교회라는 중요한 전선에서 소외자로 밀려났습니다. 신학의 자기 자리 찾기, 이것은 자기를 위해서나 제반 운동 전선의 한걸음 전진을 위해 가장 시급한 임무입니다.

(2) 비판적 영성

신앙인은 항상 세상에 대해서 비판적 영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단의 교묘한 책략을 꿰뚫어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실제적으로 인간의 죄성을 극대화하는 손이 될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기주의적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합니다. 인간의 욕망에는 국가라는 제어장치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적 운동, 기업의 합리화와 구조조정, 세계화 등에는 찬성합니다. 한국사회의 체질개선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런 태도에 대해서 기회주의적이니, 불투명하다느니 하는 비판을 가해도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런 비판을 받을 지라도 저는 제가 생각하는 방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어느 사상도 100% 다 옳은 것은 없으며, 어느 운동도 100% 자신의 주장만 관철시킬 수 없고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그렇습니다. '순수'를 요구하는 것은 지식인의 머리에서 나오는 소리일 뿐입니다.

저는 우리 현실에 맞는 것을 택할 뿐이지, 흑백논리적으로 신자유주의나 anti 신자유주의의 이론과 강령을 따를 의무는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비판적 영성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같은 신앙을 가졌으면서도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에서는 다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사람은 아닙니다. 충분히 교회적 논의와 비판적 사회적 함의에 의해 '옳음'이 결정될 때에는 저는 이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과감히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사회에서의 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판단은 유보적이기에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3) 가난한 자와 함께 하는 운동

그러나 신앙인들이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 이 땅에 오셨듯이, 교회와 신학이 가난한 이웃을 찾아 나아가는 것입니다. 가장 건전한 교회는 어디이며, 가장 건전한 신학은 무엇인가 하면 저는 가난한 자와 함께 하는 교회와 신학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운동의 순수성은 가난한 자와의 연대하는 사람, 스스로 가난하게 된 사람으로부터 나옵니다.

구조조정과 실업의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쫓겨나고 있습니다. 교회와 신학은 이들을 위로하고 경제적으로 도우며,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혹자는 교회의 이런 행위에 대해서 매맞고 상처 받은 사람을 치료할 줄만 알지, 매맞는 현실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고 조롱합니다. 우리도 이런 근본적 원인을 제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간단하지 않다는 이유는 이 사람이 누구로부터 매맞아서 상처 받았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구조조정하는 기업이나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미래의 실업을 예방하기 위해 지금의 아픔을 참아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명확한 인과관계라면 우리는 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좋은 참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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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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