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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예수는 외계인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님이 외계인이었다는 주장은
그 사실적 근거가 빈약할 뿐만 아니라, 그 동기도 의심스럽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가장 확실한 역사적 근거는 성서와 교회 전통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 두 곳 어디에서도 예수님이 외계인이었다고 추정할만한 단서를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제가 아는 바로는 교회사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어느 문헌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상의 일반 역사에서도 외계인의 존재 여부에 대해선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사실적 근거가 이처럼 빈약한 데도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을 지나치게 과신하거나 무언가 불순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이들은 성서의 몇 구절을 그 근거로 들거나
알레고리로 풀어내면서 성서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또는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말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서는 몇 구절만 따로 떼어 내어 풀거나,
취사선택해서 자기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성서는 그 구절이 속해 있는 역사적 문법적 문맥 속에서 풀어야 합니다.
이는 일반 서적이나 역사서를 읽을 때도 기본입니다.
그 글의 흐름 속에서 읽어야 하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구절 떼고 저 구절 떼어낸다면
그것은 원래 저자의 글이 아닌 새로운 글이 탄생한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알레고리, 즉 영해도 그렇습니다.
영해는 잘못하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생각을 가지고 그에 맞도록 모든 것들을 두들겨 맞추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나타났던 이단들이 그러했습니다.
특히 종말에 관한 것들을 풀면서 그런 오류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시한부 종말론이 그렇고, 요한계시록의 짐승의 숫자 666에 대한 해석이 그렇습니다.
이 666 숫자는 나폴레옹을 상징한다느니, 히틀러를 상징한다느니,
요즘은 EU 국가연합을 상징한다느니, 컴퓨터를 상징한다느니 하여 그럴듯한 논리를 갖다 붙이고 성서를 영해합니다.
그런 책들을 읽다보면 정말 그런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다 오류들로 판명이 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레고리로 풀거나 자신이 계시를 받았다고 할 때는 항상 조심하여야 합니다.
사탄의 꿰임에 빠지거나 자기 생각이나 감정에 도취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서에는 그와 반대되는 주장도 버젓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좋아하는 것만 인정하는 맹목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첫째는 성서를 문맥적으로 읽는 것이요,
둘째는 기존 교회 전통을 무시하지 말고 그 해석과 지도에 충실한 것이요,
셋째는 이성을 신뢰하고 현실에 발을 굳게 디디는 것입니다.
이중 저는 무엇보다도 세 번째 것을 먼저 권하고 싶습니다.
건전한 이성과 현실의 눈으로 판단해 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신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잘못은
이성과 현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성'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이며 모든 진리에 대한 결정적인 재판관입니다.
'현실'은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는 구체적인 현장입니다.
영적인 지식은 항상 이런 이성과 현실의 검증을 받아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외계인이었다는 주장이 정말 가능한 주장인지
먼저 지금까지의 인류의 상식으로 한 번 판단해보십시오.
아직까지 외계인의 존재여부에 대한 판단조차도 명확하지 못한데,
거기에 또한 불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예수님과 외계인을 직접 연관시키는 그들의 주장은
전혀 합리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종교적인 사람들이 가지기 쉬운 오류 중에 하나는 현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땀과 눈물과 피에 의해 하나하나 쌓여져 가는 것입니다.
역사에는 비약이 없습니다.
자연법칙과 역사법칙의 흐름에 따라 인간사는 진행됩니다.
가끔 기적이 연출되지만 그것은 잠깐일 뿐입니다.
이 법칙들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그토록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으며,
예수님은 다 자란 성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모태에서 10개월을 기다려야 했고,
해산의 고통 속에서 태어났고,
젖먹이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다 거쳐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외계인이라는 주장은 공상 소설일 뿐이지 역사가 아닙니다.
아마 이들은 청년 예수의 몸에 외계인이 들어갔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주장은 이미 교회사에서 가현설이라 하여 이단으로 정죄된 바 있습니다.
또는 원래 태어난 아기 예수는 사람이 아니라 외계인이었다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이는 슈퍼맨 영화에서나 보던 스토리 같습니다.
이 모두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들입니다. 현실에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사실 기독교는 기적을 강조하며
보이지 않는 신의 역사를 강조하기 때문에 비현실적이 되기 쉽습니다.
이단들은 우리들이 가진 이런 비현실성을 노리고
여러 가지 상상력을 자극하여 마치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우리를 속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속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영원과 역사 이 두 차원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발은 현실에 굳게 디디고 서고,
눈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외계인에 대한 문제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이 확고해야 합니다.
아마 이들은 병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을 행하는 예수님,
산상수훈과 같이 고도의 윤리적인 말씀을 선포하시는 예수님,
사랑과 자비를 행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보다 더 뛰어난 진화된 외계인의 모습과 연결시켰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고, 하나님이 되시는 것은
그런 전능성에서가 아니라 바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돌아가시는 그 비참함 속에 있습니다.

전능성이나 멋있는 말, 사랑의 행위로 따지면
인류 역사에 예수님보다 더 뛰어난 성현들이나 기인들이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늘날에도 살아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그분의 죽음, 곧 십자가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십자가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합니까?
외계인이 '십자가를 진다', '인류의 죄를 대속해 준다'......
저는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단지 기적을 행하는 능력자나 도덕 선생이나, 사랑의 실천가,
또는 위대한 성현 정도로만 생각하면
우리는 이런 유혹들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런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거짓 교사들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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