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 교회
  Home  

     
이종철 

천국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acduk 님의 << 3. '천국'은 존재합니까?
너무 추상적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런 명제로 한국 교인들은 현실의 삶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라는 질문에 대해

천국'은 달리 '하나님 나라' 라고 표현되기도 합니다.
같은 내용을 지칭하는 단어들이지만 '하나님 나라' 라고 할 때는 어딘지 모르게 역사참여적인 냄새가 나고,
'천국'이라고 할 때는 내세지향적이며, 현실도피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어떤 단어를 쓰든 이 '천국' 개념은 철저히 역사적인 반성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원래 이스라엘 역사에서 '천국' 개념은 역사 내에서 건설될 지상 왕국 개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이스라엘이 이민족으로부터 계속적인 침략을 당하게 되고,
의인의 억울한 죽음과 악인의 득세라는 신정론(神正論)의 문제가 대두되던 묵시문학기(BC200-AD100)에 이르러서는
'천국' 개념이 역사의 완전한 파국과 함께 도래하는 저 너머의 왕국 개념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비록 그 무대가 역사에서 역사 저 너머로 넘어갔다고는 하지만 '천국' 소망의 일관된 핵심은 여전히 하나님의 의(義)의 실현입니다.
역사에 어둠이 짙게 드리워 도무지 희망이 없는 것 같은 때에 천국 소망은 바로 불의에 굴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악인의 득세를 부러워하지 않고, 묵묵히 의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악인은 심판을 당하고 의인은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테니까요.

기독교는 이런 천국 사상을 유대교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예수는 임박한 천국에 대하여 선언했으며,
기독교는 예수 안에서 이 천국이 실현되어가고 있으며,
장차 완전하게 도래할 것임을 전파했습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이런 천국 소망 때문에 믿음을 잃지 않고 박해를 묵묵히 견디어 나갔던 것입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천국은 의의 실현과 투쟁이라는 두 단어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천국 소망은 끝까지 싸우자는 의지의 표명이며 조금만 더 참자는 의미이지,
역사로부터 도피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부정하고 내세만을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기독교가 아닙니다.
내세의 빛에 비추어 오늘을 반성하고 깨어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천국' 개념이 의도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대한 문제는 이 정도에서 끝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궁금해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오히려 죽음 이후의 인간 존재의 운명과 관련하여 더 많은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복음이 현재적 삶의 문제보다는 죽은 이후의 천국 소망과 직결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기독교가 내세적이라는 오해를 받게 된 데는 복음 전파라는 이유로 이런 의미의 천국을 남발한 데서 그 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실제로 존재합니까?'
인간이라는 몸을 입고 있는 사람들 중 이에 대해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도 죽음을 체험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죠.
그러니 천국이 '존재한다', '안 한다'에 대해선 그 누구도 확증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자신들의 믿음을 피력할 뿐입니다.
'모든 것이 죽음으로 끝이다'는 사람도 자신의 믿음일 뿐이요,
천국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자신의 믿음일 뿐입니다.
물론 천국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서 간접적으로 죽음을 체험했던 사람들(죽었다 깨어난 사람들)의 임상적 경험과
인류가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상상 등을 근거로 천국의 확실성을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과학적으로는 확증할 수 없는 추론에 불과할 뿐입니다.
죽음으로 끝이라는 그 반대 주장도 마찬가지고요.
죽음 이후의 세계는 우리의 과학으로는 규명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다만 이에 대한 자기의 믿음을 표현할 뿐입니다.

그러면 저는 어느 편이냐고요?
저는 '천국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성서가 '천국은 존재한다' 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서는 믿을 수 있는 책이냐고요?
예 믿을만한 책입니다.
최소한 저에게 있어서는 성서는 신뢰할 수 있는 책입니다.
성서는 저에게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디로 가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한 성서에서 가르친 하나님께 기도할 때, 나는 그 분이 나와 함께 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성서의 증언을 신뢰합니다.

제가 성서를 신뢰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이 말은 성서를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증언하는 책이지만, 성서의 문자는 시공간에 얽혀 있습니다.
성서는 당시의 문화적, 사상적 환경이라는 시대적인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의 해석학적 장벽이 있기 마련이고,
그 때문에 오역을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라는 그 무한하신 분을 성서라는 책이 다 계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신비한 경륜에 대해서 문을 열어 두어야 합니다.
문자 너머에 다른 심오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런 한계들을 인정하면서 '천국이 존재함을 믿습니다.'


   구원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이종철

   예수는 신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이종철


Copyright 1999-2024 Zeroboard / skin by Puresunn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