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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동양사상 어떻게 볼 것인가?

1. 동양사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동양사상을 미신으로만 보지 마십시오.
'서양' 사상이 있듯이 '동양' 사상도 있는 법입니다.
동양 사상을 미신이나 이단시하는 것은 서구 제국주의적 문화관의 영향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법칙과 질서를 통해서 만드셨기에 서구 과학이 발달했던 것처럼
동양에서 정신세계나 사회세계의 법칙을 탐구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주역]과 같은 책입니다.

서구 과학이 아직 정신세계의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데 동양사상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저는 기대합니다.
동양 사상을 새로운 정신과학의 일종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서구과학이나 동양사상이나 이 양자가 지향하고 있는 가치관입니다.
만약 서구과학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향으로 쓰인다면 이는 '악마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동양사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면 이는 선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구과학이 진화론의 도구가 되었을 때 이는 과학의 한계를 벗어나 사탄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역이 인간사회의 원리를 밝혀 평화와 질서를 가져다 주고, 동양의학이라는 새로운 치료법을 가져다 준다면 이는 천사의 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서구과학이나 동양사상이나 중립적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입니다.

사실 요즘 기독교가 동양사상을 터부시하기 때문에 동양사상이 오히려 믿지 않는 자들의 손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서양만 다스리는 분이 아니라 동양도 다스렸던 전능한 하나님으로 고백한다면
동양의 사상과 역사 가운데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더듬고 발굴하고 그 위에 세례를 베푸는 일도 동양 땅에 사는 크리스천의 임무인 것 같습니다.

예컨대 저도 가끔 컴퓨터에서 사주를 보는데 신통하게 잘 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성격 같은 경우는 정말 귀신처럼 잘 맞추더군요.
저는 그래서 유전법칙이 있듯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어떤 질서를 만들어 놓으셨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역이나 사주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입니다.
이것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숙명론 앞에 절망하게 만들고, 기껏해야 자기의 복을 위해서 살도록 인간을 기복화합니다.
진취적인 면이 없습니다.
'역마살 끼었으니 조심해라', '요절상이다 아깝다' 이 정도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감사하게 하는 종교이고 그를 통해서 운명을 극복하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고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묻는 운명론자들 앞에서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다"(요한복음9:3)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운명 극복의 선언입니다.

주역으로 따지자면 예수님의 사주는 역마살에 요절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운명을 인간 구원의 십자가로 바꾸십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 사주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오히려 선교의 도구로 바꾸어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고 초대교회를 세우는 위대한 일을 합니다.
주역이라는 운명의 법칙이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이 법칙이 자신을 자유케 하지는 못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운명을 바꾸어 갑니다.

그러나 점복술 중에는 사주 말고, 귀신을 불러서 점을 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사탄적이므로 반드시 거부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금하신 것도 이런 사탄적인 점복술입니다.
우상이나 미신적 행위를 통해서 길흉을 알아보려는 점복술을 금하신 것입니다.
이는 제1계명을 어기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밝히는 운명론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궁금해합니다.
그러나 다가올 운명을 미리 아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막아 놓고 계십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가끔 미래 일을 하나님께서 밝히시지만 그 의도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이고, 우리가 끝까지 믿음의 싸움을 하도록 격려하시기 위해서 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우리의 운명에 대한 궁금증을 접고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참된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 고난의 문제

믿는 사람에게도 고난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혼자 살지 않고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자신이 고난을 짊어지기도 합니다.
인간은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 죄악의 연계 사슬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문제는 고난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신앙은 이 고난을 감사로 받아들이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고난을 극복하게 만듭니다.
비온 뒤 땅이 단단해지듯 고난을 통해서 우리 인격은 더욱 더 단단해 집니다.
고난이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바꾸십니다.

고난이 비록 힘들다 할지라도 두려워는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위대함은 고난을 막아 준다는 데 있지 않고, 고난을 잘 겪을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있습니다.


3. 기도의 문제

부지런히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저축이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나 때와 방법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가장 적절한 때, 그리고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믿어 의심치 말고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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