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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과학과 신앙

과학과 신앙




과학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합리성이라는 것은 질서의 하나님이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18세기에 데이비드 흄이라는 철학자가 “내일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를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나?”는 문제를 제기해서 철학계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정말 그렇다. 누가 내일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 확신할 수 있나? 과거에 그랬다고 해서 미래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 누가 확신할 수 있나? 그러나 신앙인들은 확신할 수 있다. 질서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이성의 하나님이 우주를 합리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과학은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다. 과학은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 질서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행위다. 그래서 만유인력을 발견했던 아이작 뉴턴은 “자신은 바닷가에서 조개 하나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고백했다.  

그렇다고 하여 성경이 과학서적은 아니다. 성경은 신앙서적이다. 과학서는 사실이 중요하고, 신앙서는 의미가 중요하다. 과학서는 우주 창조의 시점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에 주목하지만 신앙서의 관심은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신 이유나 의미에 둔다. 예컨대 여기 자동차가 한 대 있다고 하면 과학적 질문은 이 자동차의 원리는 무엇이고, 엔진은 무엇을 썼고, 자동차의 유형은 무엇이고, 언제 만들어졌고 어떻게 발전했는가일 것이다. 그러나 신앙적 질문은 이 자동차는 누가 만들었나? 만든 목적은 무엇인가? 올바르고 효율적인 운전법은 무엇인가 하는 데 관심 있다. 창세기는 후자의 질문에 답하는 신앙서적이다. 사실 과학적 사고라는 것은 근대 이후에 발달되었다. 1860년대의 파스퇴르의 무균 실험이 있기 전까지는 자연발생설이라고 하여 걸레를 놔두면 거기서 자연적으로 벼룩이 생기고 심지어 쥐도 창조된다는 것이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그래서 성경 안에는 자연과학적으로 오류인 것들도 있을 수 있다.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오류로부터 발생한다. 인간이 사용하는 문자로 어떻게 하나님을 다 담아 낼 수 있겠는가? 짧은 인간의 지식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고차원적인 지식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어린아이에게는 그 수준에 맞추어 말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기 낮추심이다. 어린 아이 눈높이로 말씀하신 것이 성경이다. 하늘에 물을 담고 있다고 믿으며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수준에 맞추어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렇지만 구원과 신앙과 신앙인의 본분에 있어서는 성경엔 오류가 없다. 성경이 기록된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의 의미를 밝히고 생명과 구원을 주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밝히고 있다. 과학적 지식과 싸우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다만 과학의 윤리성이나 목적에 대해서는 성경이 따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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