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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야곱의 투쟁

야곱의 투쟁




창세기에는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기 위해 형 에서인 것처럼 가장하고 축복을 받는 장면이 있다. 축복권이란 것이 말이 축복권이지 그것은 보이지 않는 말의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땅이나 물질이 아니다. 야곱이 속여서 축복권을 받았지만 그가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 이삭이 가진 땅 한 평, 짐승 한 마리 받은 것이 없다. 그것은 다 형 에서의 차지가 되었다. 축복권은 일종의 비전과 같은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땅과 큰 민족과 복의 근원으로서의 약속을 누가 받느냐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야곱은 현재보다는 미래를 택했다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땅을 선택하겠는가? 비전을 선택하겠는가? 당장 좋은 것을 선택하겠는가? 아니면 먼 미래를 선택하겠는가?

로마 역사에서 율리우스 시저(카이사르, 가이사)는 전 로마제국을 평정한 집권자가 되었지만 원로원 일파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그 뒤를 이었던 사람은 로마 역사에서 황제정치를 열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였다. 시저에게는 원래 자식이 없었다. 그는 후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된 이 옥타비아누스를 자기 양자로 두었다. 시저가 죽을 때 옥타비아누스는 18세에 불과했고 아무도 그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가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시저가 물려준 빛나는 유산 때문이었다. 그 유산은 바로 옥타비아누스에게 시저, 곧 카이사르라는 자신의 성을 이어받을 수 있게 한 것이었다. 카이사르의 아들이라는 호칭은 옥타비아누스를 일약 엄청난 위치에 올려놓았고 그는 이 카이사르라는 이름을 발판으로 황제의 자리까지 이를 수 있었다.

이름, 명분, 비전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바로 우리를 빛나게 하고 우리 미래를 결정한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의 축복권을 받기 위한 야곱과 에서의 지난한 투쟁은 매우 현명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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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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