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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정의를 강같이

정의를 강같이




아모스 선지자는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암5:24)고 선포한다. 히브리어로 ‘정의’는 ‘체다카’ 이고, ‘공의’ 또는 ‘공법’은 ‘미쉬파트’이다. 이 미쉬파트는 특별히 재판상의 정의를 말한다. 이 정의를 물이나 강에 비유한다. 중동 지방에서 물이나 강은 생명과 같다. 물이 많은 곳은 생명이 살고 풍요롭다. 마치 그것처럼 민족이나 나라를 살리는 것이 정의이다. 정의는 마치 우리 몸에 흐르는 피와도 같다. 피가 원활하게 돌 때 온 몸과 세포는 건강하게 자란다.

동양의 『맹자』 편의 교훈이다. 양혜 왕이 맹자를 찾아서 물었다. “나라의 이익이 될 일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맹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이 나라의 이익만 생각하면 관료들은 자기 집안의 이익만 생각하고, 백성들 또한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게 되어 나라 전체가 자기만을 생각하게 되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는 뜻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과 같다. 모두가 이익만 생각한다. 권력자들이 민족보다는 자기의 이익 챙기기에 바쁘다. 공무원이 법과 공무보다는 자기의 이익과 조직의 논리를 따라 행동한다. 기업이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극단적인 이익만 추구한다. 교회나 종교인이 자기 성장만 추구하고 좋은 자리 차지하기에만 연연한다. 모두 자기 이익만 좇으면 사회는 불평등과 불만이 가득한 지옥 같은 사회가 된다.

정의란 불평등과 관련된다. 강자나 약자 사이에,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불평등이 없고, 그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정의이다. 힘이 불균형한 두 상대방 간에는 공평하기가 어렵다. 사람들은 강자에게 기울게 되어 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한 극단적인 하나님의 방식이 바로 가난한 자에 대한 편애이다. 예언자들은 과부, 고아, 나그네, 이방인, 가난한 자, 의인을 학대하지 말라,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 주어라고 끊임없이 외쳤다. 그래야 겨우 균형을 맞출 수 있다. 강자나 부자는 법적인 보호 없이도 잘 산다. 약자를 법으로, 실제적으로  보호해주는 것이 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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