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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고리대금업의 문제

고리대금업의 문제




이스라엘은 자기 민족 간에는 이자를 받지 못한다.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출22:25-26) 사람이 노예가 되거나 가난에 빠지는 이유는 빚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형제 공동체이다. 불평등 사회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성서는 이자를 원천적으로 금지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누지 문서에서 이자율은 50%에 달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는 곡식은 33.3%, 은은 20-25%의 이자를 내야 했다. 빚을 못 갚으면 노예가 되거나 감옥에 갔다. 이자는 히브리어로 ‘네쉐크’인데 어원이 ‘나솨크’(물어뜯다)에서 왔을 정도이다. 랍비 라쉬는 이자의 무서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뱀이 무는 것과 흡사하다. 처음에는 발에 난 작은 상처를 못 느끼지만 일단 부어오르면 머리끝까지 온 몸이 다 붓게 된다. 이자란 그런 것이다.” 예수님도 이자에 대해서 부정적이셨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눅6:35)

중세의 교회 또한 고리대금을 엄격히 금지했다. 단테의 『신곡』에서 고리대금업자는 지옥 7층에서 고통을 당한다.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은 십계명의 네 이웃의 재물을 탐내는 절도라 하였다. “고리 대금업은 자궁 속의 아이를 살해하고, 젊은이의 구애를 가로막고, 침대에 중풍을 가져오고, 젊은 신부와 그녀의 신랑 사이에 드러눕는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돈은 돈을 낳지 않는다. 돈은 교환을 위해 발명된 것이다. 빌려준 돈을 사용한 데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고리대금업은 당시 소외받던 유태인들의 주된 돈벌이가 되었다. 자기 동족이 아니면 이자놀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교회도 이자를 허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칼빈은 가난한 자를 대상으로 이자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금했지만 상업적인 목적을 위한 제한적인 수준의 이자는 인정하였다. 더 나아가 청교도들은 자신이 가진 재물이나 노동을 활용하여 더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소명이라고 하였다. 이제는 화폐를 통한 부의 축적이 오히려 칭송을 받는 시대이다. 성경의 원래 정신을 되새겨야 자본주의 탐욕의 폭주를 제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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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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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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