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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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말씀의 하나님

말씀의 하나님




이스라엘은 성전을 보며 하나님을 만났다. 그러나 성전이 무너지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서는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는가? 바로 말씀을 통해서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이다. 말씀은 모세오경 곧 토라이다. 유대인들은 토라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다. 안식일을 준수하며 그 시간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만났다. 말씀은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어느 장소나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말씀은 임할 수 있었다.

이는 말씀에 대한 예찬으로 발전했다. 시편 곳곳에는 말씀, 곧 율법에 대한 찬양시들이 있다. 말씀은 능력이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 수단은 말씀이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그대로 되니라”가 반복되며 세상은 만들어졌다. 유대 전통에서는 창조가 일어나기 2,000년 전에 먼저 말씀이 출현했다고 전한다. 이 말씀은 공중에 흩어지는 그런 말씀이 아니다. 역사를 만들고 성취하는 말씀이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삭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55:10-11) 역사를 이끌어 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이기에 유대 랍비들은 말씀을 묵상하거나 연구하고 있다면 그곳이 바로 성전의 지성소와 같다고 하였다. 성전이 무너지고 난 후에도 회당으로 유대인의 신앙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도 당신의 일과 중에 3분의 1을 말씀연구에 사용하신다고 유대 전승은 말한다. 신실한 신앙인이 말씀을 연구할 때는 하나님도 개입할 수 없었다.

우상의 종교는 보는 것을 중시한다. 덕분에 예술이 발전하기도 하지만 신은 보는 것으로 제한 당한다. 그러나 말씀의 종교는 소리의 신앙이다. 듣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성경은 “들으라(쉐마)”는 외침으로 가득하다. 소리는 제한할 수 없기에 예술성보다는 실용성이 중요해졌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성막은 재료와 크기가 중요했지, 예술성이나 아름다움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이름 야훼

이종철

   숨어 계시는 하나님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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