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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찬양과 말씀의 검(시편149편)

새벽기도(2006.10.31)  /  찬송 391장(십자가 군병되어서)  / 시편 149편

찬양과 말씀의 검




1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
2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시온의 자민은 저희의 왕으로 인하여 즐거워할지어다
3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5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6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7 이것으로 열방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8 저희 왕들은 사슬로, 저희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9 기록한 판단대로 저희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본 시편의 기조는 매우 전투적이다. 6-9절이 특히 그렇다. 다른 시편에서는 복수하는 자로서 여호와가 주어로 등장하지만 여기서는 인간이 주어로 등장한다. 입으로는 하나님께 드릴 찬양으로 가득하지만 손에는 양날 칼을 들고 있다(6). 그 칼로 뭇 나라에 복수하고 민족들을 철저히 심판한다(7). 그 심판은 9절에 따르면 “기록한 판단대로 저희에게 시행” 하는 것이다. 기록한 판단이라는 것은 아마도 예언자들의 열방을 향한 심판 예언일 것이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주변 나라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런데 이 시가 독특한 점은 심판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성도들’이라는 점이다. 1,5,9절에 등장하는 ‘성도’는 히브리어로 ‘하시딤’이다. 이는 ‘율법에 경건한 무리들’을 가리킨다. 하시딤은 BC 2세기 경에는 유대교 내에서 특정 분파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고, 바리새파가 바로 이 하시딤을 모체로 하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시의 연대를 BC 2세기경의 마카비 전쟁 때로 추정하기도 한다. 마카비 전쟁은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모독하며, 당시 유대 땅에서 율법을 금지 시켰던 시리아에 대항해서 싸웠던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BC 164년에 예루살렘을 수복하여 정결케 하고 하누카(수전절, 요10:22) 축제를 벌였다. 연대를 이 때로 추정하는 근거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확실한 것은 이 시가 하나님의 싸움을 대신하는 전사로서의 이스라엘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종교개혁 당시에 토마스 뮌처는 농민전쟁을 주도하며 이 시편을 애용하였고, 독일 30년 전쟁에서 가톨릭 편에 섰던 제후들 또한 이 시편의 이스라엘과 자기를 일치시켰다. 십자군 전쟁 때도 성전(거룩한 전쟁) 논리를 폈고, 지금도 미국은 자신들의 싸움을 성전이라 주장하며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성전 논리는 조심해서 사용하여야 한다. 구약시대 하나님은 주로 정의와 심판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지만 신약시대에는 자신을 주로 사랑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신다. 심판은 마지막 최후의 심판 때로 미루어 놓았다. 그것은 모든 인류가 구원받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 성전 논리는 잘못하면 자기 민족주의나 인간의 욕심, 폭력성을 미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용될 우려가 있기에 이의 사용을 조심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성도들의 영적 싸움을 위해서는 매우 소중한 교훈이다.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6) 성도들에게는 두 가지 무기가 필요하다. 하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이요, 다른 하나는 사단과 어둠의 세력들과 싸우는 데 필요한 양날의 검이다. 찬양은 방패이자 무기이다. 찬양할 때 우리 속에 있던 어둠들이 물러간다. 근심, 염려, 두려움들이 사라진다. 우리 손 안에 들고 있어야 할 검은 말씀의 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히4:12).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7).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고, 광풍을 잠잠케 하셨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말씀을 암송한다는 것은 매일 우리의 무기를 갈고 닦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은 성도라 불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요 겸손한 자라 불린다(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겸손한 자는 가난한 자로, 눌림 받는 연약한 자로 번역할 수 있다. 여호와의 군대는 인간적으로 강한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요, 애통하는 자요, 온유한 자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요, 긍휼히 여기는 자요, 마음이 청결한 자요, 화평케 하는 자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이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연약한 자들을 들어 써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분, 그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찬양할 지어다(시편150편) [2]

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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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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